[태화강]언어의 유희와 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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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언어의 유희와 비수
  • 경상일보
  • 승인 2021.09.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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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뜨거운 감자’ ‘찻잔속의 태풍’…식자들의 언어유희들이다. ‘미니슈퍼(MSM)’는 구멍가게를 수퍼로 부르다가 수퍼수퍼(SSM)가 나오니 급조된 언어다. ‘서민갑부’를 보자. 서민이면 서민이지 갑부가 될 리는 없을 터이고, ‘귀족노조’도 그렇다. 노동자는 절대로 귀족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서울중앙지방법원, 어쩌다보니 중앙이면서 지방이 되었다. 이 정도는 애교다. 자칫하면 오해할 용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면에 클로즈업되는 사람들은 이슈가 있을 때 ‘실체적 진실’이라는 용어를 구사한다. 일반인들은 정말 실체가 드러나 ‘아 사안의 내막이 다 드러나는구나’ 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이 법관이 증거능력이 있고 증명력의 범위내에서 사실에 관한 심증을 갖는 구조로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이론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시 말하면 실체적 진실은 실제 있었던 자연적인 진실이 아니라 제출된 증거로 확정되는 사실을, 즉 절차상 인정되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즉, ‘증거가 없으면 사실도 없다’는 교묘한 논리가 숨어 있다.

경제분야에서도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일이 아니다. 양적완화(Quantitative Easying). 돈을 풀면서 그냥 ‘돈풀기’라 하지 않고 아리송한 용어를 쓴다. 양적완화의 반대로 ‘돈줄 죄기’를 테이퍼링(Tapering)이라고 한다. 소득주도성장(Income-led Growth). 성장의 요소로 재정, 기업투자, 약간의 낙수효과, 가계소득의 기여 등이 골고루 작용할 터인데 보조적 경제성장 수단인 ‘소득지원 강화’가 과잉동조된 것 같다. 소득을 늘려준다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도 성장지상주의자가 ‘후퇴’를 ‘성장’으로 바꾸는 절예(絶藝)의 마술 ‘마이너스 성장(Minus Growth)’보다야 백배 낫지만. 부자감세를 보자. 부자들로부터 걷는 세금이 줄어들고 부가가치세처럼 어디선가 메꾸어야 될 터인데, 마치 부자들 세금 깎아 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복지정책을 주장하는 정치인이 나오면 ‘그건 포퓰리즘(Populism)이다’라고 주장하고 여기에 대중들은 부화뇌동해 포퓰리즘을 금기되어야 할 말로 여긴다. 과연 그러한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다면 과연 정치인이라 할 수 있을까? 포퓰리즘의 기원에 대해 로마시대 호민관이던 크라쿠스형제가 평민을 위해 한 농지개혁, 러시아에서 농민계몽을 통하여 사회변혁을 꾀하던 나드로스키(Nadroski)운동이나 미국의 인민당(People’s Party)이 한 농민운동을 든다. 깃발을 보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면 ‘구호’에 현혹될 일이 아니다. 극단적 퍼주기로 국가재정을 병들게 하는 대중영합도 당연히 비난의 대상이지만, 엘리트이즘(Eliteism)에 빠져 국민을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를 고착화한다면 이 또한 경계할 일이다.

경제민주화(經濟民主化). 자(資)가 본(本)인 주의(主義)의 나라에서 한 푼의 주식도 없는 민(民)에게 소유자의 권리를 허용할 수 있는가? 정치인들의 공약집을 요약하면 대부분 ‘국가의 효율적인 성장과 일자리 확보’라고 쓰는데도 이 모순적 주장에 무신경한 민중에게 경외심까지 든다. 생산성과 효율을 극대화하면 서민의 일자리가 늘까? 기계화, 정보화, 조직화로 효율이 늘어 기업의 주머니가 커지면 반작용으로 일자리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혁신의 결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자리가 줄어들 판이니 혁신이 필요없는 부분은 비효율로 놔두면 안 될까. 식자들이여! 언어유희를 그만하자. 사회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모호함의 장막에 숨어 깜빡이를 켠 반대방향으로 운전하면 위험하지 않겠는가.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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