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구를 위한 ‘추억의 고교시절 특화거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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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누구를 위한 ‘추억의 고교시절 특화거리’인가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1.09.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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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가 공업탑로터리 인근 울산여고~남부경찰서 일원을 ‘추억의 고교시절 특화거리’로, 삼호동 일원을 ‘곱창 골목 특화거리’로 만들겠다고 한다. 난데없기도 하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이미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진행한 울산여고~남부경찰서 지역에 다시 특색을 덧입혀야 할 이유가 있는지, 삼호동에는 곱창가게가 줄지어 늘어서 있지도 않은데 특화거리가 될지 의문이다. 2곳의 특화거리 조성에 예산이 10억원 넘게 들어간다.

울산여고~남부경찰서는 1990년대 울산에서 가장 상권이 발달했던 곳이지만 2000년대 들어 삼산지역 개발로 상대적 쇠퇴기를 겪었다. 남구는 이곳 176m 가량의 거리를 학창 시절 사진과 벽화로 꾸미고 안내판, 조형물, 키오스크 등을 설치하겠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고교시절 사진을 공모하고, 1962년 특정공업지구 기공식 및 공업탑 사진, 대통령 치사문 등으로도 꾸밀 계획이라니 60~70년대 고등학교를 염두에 둔 추억 되살리기로 예상된다. 고교시절은 세대마다 다르다. 특정 세대를 기준으로 고교시절 특화거리라고 해서는 더 많은 다른 세대들의 공감대를 끌어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범위를 조금만 넓혀보면 이 일대는 지금 적잖은 아파트 건설이 이뤄지고 있다. 인근 종하체육관은 재건축을 통해 청년 창업과 IT 교육 등의 미래지향적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서게 된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추억의 고교시절 특화거리’가 어울리지 않는 지역이다. 이들 새로운 시설들이 아니더라도 공업탑로터리 일대는 중·고등학교가 많아서 10대들이 몰리는 곳이다. 그들에게 50~70대의 고교시절 추억을 되살리는 거리를 걷게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도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삼호곱창골목도 특정 음식 골목이라 칭하기엔 이미 늦었다. 한때 곱창가게들이 늘어났지만 지금은 몇 안 된다. 예산 투입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역사가 오래된 가게를 인정해주는 현판 정도라면 모를까 안내판과 조형물, 경관조명까지 설치하는 것은 아무래도 예산 낭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리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문턱이 없는 가장 큰 문화공간이다. 그래서 특별한 일화가 없는 일반적인 거리단장은 특수성 보다는 보편성 획득에 치중해야 한다. 깨끗하고 편리하게 관리하되 표지판과 가로등, 배전함 등 필수 가로시설물들의 디자인 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특화거리라고 이름 붙여서 갖가지 치장을 해놓은 것 치고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차량과 보행자만으로도 비좁은 것이 우리 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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