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오패라는 말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다섯 명의 패자를 일컫는 말이다. 첫 번째 패자는 제나라 환공이며, 두 번째 패자는 진(晉)나라 문공이다. 성은 희(姬), 휘는 중이(重耳)이며, 문공은 시호이다. 문공은 아버지 헌공의 뒤를 잇지 못한 채 그를 죽이려는 이복형제들의 칼을 피해 19년 동안이나 망명길에 올랐다. 여러 나라를 유랑하는 동안 문공은 곳곳에서 푸대접과 멸시를 받았다. 온갖 시련들을 다 이겨낸 뒤에야 인품과 능력을 널리 인정받아 돌아와 정권을 쥘 수 있었다.
유랑시절 문공 일행이 위나라와 제나라 국경지방을 지날 때다. 문공일행이 먹을 것을 구하자 그 지방의 농부가 밥그릇에 밥 대신 흙덩이를 담아 주었다. 화가 치민 문공은 밥그릇을 발로 차려고 했다. 이때 그의 곁에 있던 외삼촌이자 스승인 호언이 “흙은 생명을 길러내는 신성한 것이니 절을 하고 받으십시오”라고 했다. 문공은 일개 필부에게 화를 내는 대신 흙덩이가 담긴 밥그릇에 절을 했다. 문공이 성질대로 화를 냈다면 후세에 아무런 일화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며, 춘추오패는커녕 정권을 쥘 수도 없었을 것이다.
“흙덩이를 주더라도 받으십시오”라는 말을 하기도 어렵지만, 그 말에 따라 감정을 다스리고 흙덩이에 절을 하기는 더 어렵다. 분노나 원망 등 좋지 않은 감정은 절제하면 할수록 좋다. 그런 감정에 의한 말과 행동은 상대방에게도 좋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감정대로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살다 보면 가끔은 감정대로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감정을 잘 다스리는 게 좋다.
재미있는 건, 문공을 업신여긴 건 작은 나라의 별 볼 일 없는 제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당시 패자였던 제나라 환공이나 강대국이었던 진(秦)나라, 초나라의 제후들은 문공을 잘 대해주었다. 인물은 인물을 알아본다고도 할 수 있지만, 타고난 그릇의 크기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사람의 위치나 행색에 따라서 차별하는 경우가 흔하다. 조금만 기분이 상해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 밥그릇에 담긴 흙덩이에 절을 한 문공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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