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 없습니다
상태바
[기고]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 없습니다
  • 경상일보
  • 승인 2021.10.05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경례 울산시 어르신복지과장

하늘에 가을이 왔다. 초록 이파리가 저마다 색을 내고, 대추가 익어가는 시월이다. 법정기념일로 제정된 노인의 날도 있다. 올해로 25번째다. 예년 같으면 10월2일 전후로 흥겨운 경로 위안 행사를 개최했을 텐데, 코로나 상황으로 여건이 녹록지 않다. 비대면 경연대회와 온라인 줌(ZOOM) 참여를 병행한다.

“니 들이 전쟁을 알아?” “보릿고개는 들어 봤고?”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의 어르신은 산전, 수전, 공중전을 두루 거친 무림의 고수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아니라 현생에서 국권 회복과 국토를 지킨 영웅들이다. 경제·사회 민주화를 이끈 자부심이 보태지는 건 당연지사다.

노인의 산술적 연령 기준은 만 65세 이상이다. 울산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올해 6월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13.1%, 인구수는 14만7811명이다. 내년 말께는 14%에 접어들어 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인구의 평균연령이 38.9세로, 17개 시도 중 가장 젊은 도시에 속했는데, 어느새 선두 자리를 내준 상태다. 고령인구 비중이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 분류하는데, 멀지 않았다.

가까운 미래에 마주할 우리의 미래상이 눈에 아른거린다. 옆집 아저씨와 마주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고 하니, 퇴직하셨다는 얘기가 들린다. 집에서 삼식한다고 불려질까 내심 불편한 눈치를 보이신단다. 울산은 1인당 개인소득이 2019년 기준으로 2261만원으로 서울시 다음으로 높다. 이런 연유로 퇴직 후의 소득 공백기에 대한 우려와 고민은 예견된 상태다. 이 간극을 메꾸는 제도가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현재 울산에서 매년 1만2000개 이상의 일자리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경제적 보탬은 물론 삶에 활력을 얻는 순기능이 상당하다는 평가다. 좋든 싫든 삼식에서 탈출할 수 있고, 신체활동 덕분에 의료비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덤이다.

여기에 준비 없이 찾아온 여유가 마냥 행복한 건 아니라는 말도 얹는다. 교육열에 힘입어 고등교육 이수율이 높고 학습 욕구도 뛰어난 데 접근성, 비용, 나이 등 조건에 맞는 이용처가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취미, 체육 등 여가 활동을 지원할 노인복지관 인프라가 더 늘어야 하는 것이 같은 이치다. 코로나 상황 이전에는 노래 교실, 스포츠댄스, 스마트폰 활용 등 인기 강좌 신청일에는 새벽부터 줄을 선다는 어르신들의 하소연이 길다. 제2시립노인복지관이 2024년 개관되면, 이 같은 수요를 일부 해소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더 큰 문제는 고독과 질병이다.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닥치는 숙명적 과제다. 전문가들이 꼽는 장수의 비결 중의 하나가 가족과 함께, 균형 잡힌 식사, 그리고 지역 공동체와의 지속적인 유대관계란다. 이것은 가족 돌봄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 형태는 기대하기 힘든 구조에 와 있다. 가족 구성원이 단촐해진 건 오래전이고 1인 가구도 계속 늘고 있다. 형제, 자매 구성이 드물다 보니 요즘 아이들 삼촌, 이모라는 호칭을 낯설어한다는 말도 들린다.

독거, 조손, 고령 부부 가구 어르신들께 안부 확인, 말벗, 식사, 청소, 외출 동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맞춤 돌봄 서비스가 있는데, 익숙한 자기공간에서 일상생활을 돕는 형태라 해마다 이용자가 늘고 있다. 치매와 같은 전문돌봄이 필요하다면, 2023년 개원 예정인 공공 실버케어센터를 기억에 새기는 것도 방편일 수 있다. 고령사회를 맞고,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면서 2020년에 가입한 WHO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 체계는 도시 인프라 조성과 생활 안전망을 담은 종합 길라잡이 격이다. 걷는 걸음이 안전하고, 돌봄이 편안하도록 체감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라는 시인의 노랫말이 퍼뜩 스친다. 인내와 희생이라는 무게는 던지고, 건강과 행복이 조롱조롱한 삶을 선사하고 싶다. 경연대회 참가 선수의 눈빛과 율동, 9988!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외침과 후끈한 무대 열기가 대추색보다 붉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 노인의 날!

박경례 울산시 어르신복지과장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울산 앞바다 ‘가자미·아귀’ 다 어디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