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시속 4㎞ 도시계획’이 만드는 도시경쟁력
상태바
[경상시론]‘시속 4㎞ 도시계획’이 만드는 도시경쟁력
  • 경상일보
  • 승인 2021.10.15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대학원장 주택·도시연구소장

가을, 걷기 좋은 계절이다. 산책을 겸해 걷기에 나서는 분들이 많아졌다. 코로나 이후 긴 ‘집콕’ 때문에 운동 부족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 탓도 있다. 걷는 것과 도시, 보행과 도시의 경쟁력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걷기 편한 도시가 경쟁력이 있는 도시다. 걷기 좋은 도시가 시민의 ‘삶의 질’이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시속 4㎞’, 자동차의 속도가 아니다. 사람이 걷는 평균 보행 속도다. 대도시 대부분은 ‘사람’ 중심의 도시가 아니라 ‘자동차’ 중심의 도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도시계획(Urban Planning)의 산물이기도 하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가 좋은 도시, 경쟁력 있는 도시라고 불렸다. 빠른 ‘속도(Speed)’가 경쟁력이었던 때다. 그러나 속도만이 도시의 경쟁력인 시대는 이제 지나고 있다. 코로나까지 덮친 시대적인 상황은 도시와 관련된 많은 잘못된 계획적 관행에 대해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시 등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 프로젝트’ 역시 자동차의 속도가 아닌 사람들의 ‘보행권’과 관련 된다. 파리시의 ‘15분 도시’란 ‘도보나 자전거로 집에서 15분 이내에 필요로 하는 모든 시설의 이용이 가능한 도시’를 말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보행자우선도로’로 불리는 ‘보네르프(Woonerf)’가 있다. ‘생활의 마당’이라는 뜻의 ‘보네르프’는 차와 사람이 함께 쓰는 도로이지만 사람이 우선시 되는 도로를 말한다. 도로의 주인이 자동차가 아니라 그곳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70년대 이후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이러한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사람 중심의 도시 만들기의 핵심에 도시 걷기로서의 ‘보행’이 있다. 울산은 얼마나 걷기 좋은 도시일까? 울산에도 걷기 좋은 길들이 많다. 울산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750㎞ 연장의 트레킹 코스다. 이 가운데 울산 해파랑길은 진하해변, 덕하역, 태화강전망대, 염포산, 일산해변, 정자항에 이르기까지 조성되어 있다. 울산 도심에도 있다. 울산 출신 가수 고복수 선생을 기리는 ‘청춘고복수길’과 울산 향교와 동헌 그리고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조성된 ‘(시계소리)똑딱길’ 등이 있다. 최근에는 울산 영남 알프스 9봉 완등 인증을 할 경우 기념은화를 준다고 해서 울산 시민들뿐만 아니라 외지에서도 많은 방문객들이 몰리고 있다. 현재 기념 은화 3만개 가운데 1만7000개가 소진될 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도심 보행과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보행길이 조성되었다고 해서 울산이 ‘걷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도심과 보행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걷기 위한 보행길은 따라서 끊어져서는 안 된다. 연결되어 연속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보행자들이 걷기에 안전해야 하다. 그래서 다른 대도시들도 도심 내 불필요한 육교를 없애고 필요한 곳에 횡단보도를 추가 설치해 걷기 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야 보행약자뿐 아니라 고령자와 일반인들 모두 이용하기에 불편이 없다. 부산에 ‘갈맷길 1000리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기존 해안도로나 산지, 도심 일부를 걷는 700리 보행길에 300리의 도심 보행길이 추가된 것이다. 기존의 좋은 보행길이지만 연결이 안 되어 끊어진 길과 새로운 도심 길을 잇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걷는 도시’ ‘걷기 좋은 도시’는 제도적으로도 ‘보행권’을 일찍이 확보했다. 도시별로 보행권 조례를 만들기도 한다. 울산시 역시 2012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에 관한 조례’와 더불어 2019년에는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조례’ 역시 제정했다. 행정적으로 그리고 제도적 기반으로 울산은 ‘보행도시’ 임을 천명한 것과 같다. 그러나 울산이라는 도시 공간적 특성도 있겠지만 울산이 보행도시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빼어난 산지와 해안 경관을 갖고 있고 우리나라 최대의 공업도시라는 공간적 특성을 ‘걷기 좋은 울산’으로 재창조했으면 한다. 부산 수영구의 ‘F1963’이 기존의 공장에서 문화복합공간으로 재창조되어 지역 시민들과 많은 외지인들에게 가보고 싶은 주요 방문코스가 된것 것처럼 울산의 도시매력을 걷기와 연결시켰으면 한다. ‘시속 4㎞의 도시계획’이 도시의 경쟁력과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낸다는 점을 관련 행정가와 시민들이 새롭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행정가들이 앞서고 시민들이 도와줘야 한다. 알면 바뀐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대학원장 주택·도시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