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형 미술도시, 울산!]미래형 미술관, 고전예술을 디지털시대로 잇다
상태바
[미래형 미술도시, 울산!]미래형 미술관, 고전예술을 디지털시대로 잇다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10.20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9월초 방문했던 ZKM. 시오타 치하루의 ‘삶과의 연결’(Connected to Life)이 설치됐다. 팬데믹 상황을 의미하는 철제병상에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의학(과학)에 대한 희망을 담았다.

울산시립미술관 개관이 임박했다. 빠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엔 울산지역 첫 공공미술관이 관람객을 맞는다. 울산시립미술관은 ‘21세기 미래형 미술관’을 기치로 내걸고, 이에 공감하는 전 세계 뮤지엄을 연결해, ‘미술’이라는 정체성으로 울산이 새로운 국제 관계망을 주도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미디어 아트’는 울산시립미술관이 선택한 여러 방편 중 가장 대표적 장르다. 본보는 최근 독일과 영국을 거쳐 서울과 광주를 방문했다. 그리고 울산시립미술관이 미래사회의 맥을 같이 도모할 미래형 뮤지엄을 보고 돌아왔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본보가 그려 본 ‘미술도시 울산’의 미래를 총 7회에 걸쳐 소개한다.
 

▲ ZKM 건물외형.
▲ ZKM 건물외형.

예술과 미디어 센터(Zentrum fur Kunst und Medien·이하 ZKM)는 독일의 중소도시 카를스루에(Karlsruhe)에 있다. ZKM은 ‘미디어 아트’가 낯설던 30여년 전, 이미 ‘미디어 아트’에 방점을 두어 전시와 연구목적의 뮤지엄을 개관했다. 그들의 사명은 고전예술을 디지털시대로 이어가자는 것이었다. 인구 30만명에 불과한 이 곳이 첨단 현대미술의 메카가 된 배경에는 기초과학, 응용공학, 정보기술을 아우르는 대학과 연구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ZKM 건물은 오래된 건축물을 활용한 것이었다. 1·2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탄약과 화약 등을 제조하던 탄약공장이었고, 종전 후 1970년대까지는 제철소로 활용됐다. 이후 20년간 방치됐던 공간은 철거 수순을 밟기도 했지만 시 차원에서 ‘보존’에 의미를 뒀고, 1986년 시와 학계·시민들이 주축이돼 이곳을 예술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ZKM으로 변신시켰다. 지상5층의 유럽식건물은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일자형이었다. 폭은 100m, 길이는 300m에 달했다. 이를 세분해 다양한 크기의 전시실, 미디어 박물관, 음향연구소, 헤르츠 연구실, 극장, 카페, 아트수리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 팬데믹 이전 ZKM.
▲ 팬데믹 이전 ZKM.

개관 30주년(2019년)이 지난 ZKM에 대해 제2의 도약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은 오스트리아와 일본 등 후발 기관들과 더불어 여전히 세계 최고의 미디어 아트센터로 불린다. 다만 해마다 22만명이 방문했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지난 해와 올해 상반기까지 6개월 이상 문을 닫아야 했고, 지난 여름에서야 한정된 인원에 한해 입장을 허용할 수 있었다.

9월 방문한 ZKM은 코로나의 분위기가 여전히 짙게 느껴졌다. 로비에서 처음 맞닥뜨린 전시물은 코로나의 불안감이 그대로 반영된 일본 작가의 설치미술이었다. 철제 침대 프레임을 쌓아올려 공간 전체를 지배한 뒤 역시나 작품 전체를 뒤덮는 투명 고무관으로 붉은 액체가 흐르도록 장치했다. 코로나 팬데믹과 감염자의 확산 등 작가의 의도가 어렵지않았다. 실로 오랜만에 ZKM을 방문한 시민들이 그 작품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이어갔고, 출판물을 파는 서점 역시 활기를 찾아가는 듯 했다.

▲ ZKM의 미디어 아트 교육프로그램.
▲ ZKM의 미디어 아트 교육프로그램.

주 전시장에선 ‘예술의 새로운 역사’를 살펴보는 특별전이 ‘미래의 역사를 쓰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1만점에 가까운 소장품 중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미디어 아트라고 여겨지는 작품을 선별해 보여준 뒤 20세기와 21세기 예술의 흐름을 가늠하도록 돕는 자리였다. 전시장 가득 500개 이상의 오브제가 채워져 있었다. 사진, 그래픽, 회화, 조각 뿐만 아니라 컴퓨터 기반 작품, 영화, 홀로그래픽, 키네틱 아트, 옵아트, 사운드 아트, 비디오 아트가 총망라됐다.

특이한 점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한국의 백남준은 그 곳에서도 메인 자리에 차지했다. 그의 작품 ‘노아의 방주’(1989)는 6000평방미터 면적의 전시장 입구를 장식했고 오르락 내리락 전시공간을 이동하는 내내 백남준의 작품과 마주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전시장과 함께 한 미디어 도서관도 운영됐다. 소장품과 기획전도 중요하지만 비디오 관련 자료와 서적으로 채워진 도서관이야말로 ZKM 최고의 프라이드라고 했다. 무엇보다 그 모든 자료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초창기부터 시각적인 기술과 아트 뿐 아니라 ‘음악’ 등 사운드 관련 연구·개발·작품 제작에 관심을 가져온 ZKM의 음향 연구소 역시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과 지역 아티스트들이 함께 참여해 작곡, 녹음, 기술 개발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72개의 스피커가 장착된 공간은 마치 콘서트장에 있는 것처럼 웅장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ZKM의 중요 과제 중 하나는 ‘낡은 것의 복원’이다. 비디오영상연구스튜디오에서는 1950년대 개발된 오디오, 낡은 TV, 수신기, 옛 비디오 작품 등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진행하고, 복원된 작품은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을 다시 만나도록 했다. 오래 된 명화를 복원하는 기술연구소처럼, 미디어 아트의 부품이 수명을 다하거나, 낡아서 교체해야 할 경우 이를 작품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새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