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살갗에 와 닿으며 코끝을 간지럽힐 때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이 바람이 너무 좋다. 차갑게 와 닿는 촉감이 실크처럼 부드러우며 입안에서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 같다.
체질적으로 열이 많은지 차갑고 서늘한 냉대성 기후를 좋아한다. 날씨도 이렇게 받쳐주는데다 퇴근할 때마다 내 눈앞에 영축산이 마주하고, 신불산이 우뚝하니 서 있고 그 옆으로 간월산이 항상 마중을 나온다. 한 번 놀러 오라고 손짓하듯이 나를 계속 응시하는 것 같다.
겨울부터 봄까지 열심히 이산 저산 찾아다니며 인사도 나누고 계절에 걸맞지 않은 땀도 흘려보고, 상고대도 구경해 보고, 봄 새싹이 움트는 장면들도 마음 카메라 속에 고스란히 담아 두었다.
코로나19 덕분에 딱히 갈 데도 없고 사람들 간 모임도 없으니, 한동안 잊었던 취미인 등산으로 관심이 자동으로 쏠렸다. 처음에는 30분만 올라가도 숨이 막히고 허벅지 근육이 뭉치듯이 당겨 올라 언제 산 정상까지 오르나 했다. 그러다 한 번 두 번 다니다 보니 왕년의 실력이 쓱 나오면서 날다람쥐 마냥 이산 저산을 아주 자유롭게 다니게 되었다. 산 코스도 이 코스 저 코스 내 맘대로 골라서 다니면서 코스별 장단점을 분석해보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코로나 시국인 만큼 굳이 타 시도를 벗어나 등산을 할 필요는 없다. 영남알프스 9봉만 해도 등산의 갈증을 해소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가지산, 운문산,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문복산, 고헌산, 천황산, 재약산 이 9봉은 해발 1000m가 넘는 영남알프스에 있는 산들이다.
울주군에서는 이 산들을 완등한 인증샷을 찍어 보내면 은으로 만든 완등 메달을 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몸은 당연히 완등 완료를 해서 가지산테마 기념 은화를 보유하고 있다. 내년에는 간월산테마, 그다음으로는 신불산테마 등등해서 2029년에 문복산테마를 끝으로 기념은화 9개를 증정하게 된다. 산에 가기만 해도 좋은데 기념으로 은화까지 덤으로 주니 산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산이 나를 부르는 신호로 느껴진다.
산이 자꾸 손짓하는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지고 설레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어서 그런지 산들과 마치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영축산만 자꾸 가고 가지산을 가지 않으면 가지산이 삐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습고 황당한 상상도 하면서 영남알프스 9봉을 골고루 방문하려는 계획도 세우게 된다. 산은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산은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갈 때마다 새롭고 다양하다.
그것이 참으로 신묘하다. 이 코스 저 코스 모두 섭렵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태산이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지나가고 산도 한번 오라고 부르는 것 같으니, 10월부터는 다시 산들을 찾아다녀야겠다. 무릎 연골 관리도 잘하면서 산들과의 교류가 끊어지지 않도록 자연과 친해지는 가을을 보내보아야겠다.
시끌벅적하게 등산 일행이 많을 필요는 없다. 고요한 적막 속에 선명하게 들리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를 친구삼아 마음을 단전 아래로 가만히 내려놓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딛는 내 발걸음과 호흡에 집중하는 일이 더 재미있으니 말이다.
이정란 월계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