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의 혁신 마인드·시민 주인의식 ‘세계적 미술관’ 자양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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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의 혁신 마인드·시민 주인의식 ‘세계적 미술관’ 자양분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10.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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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장화 프로젝트를 위해 괴테의 초상화 앞에 앉은 막스 홀라인 전 관장.

독일 프랑크푸르트에는 마인강을 따라 30여 곳의 역사문화예술기관들이 밀집돼 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집’을 비롯해 박물관, 미술관, 사진관, 영화관, 도서관, 건축관 등이 5~10분 거리에 산재한다.

그 중 슈타델미술관은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지구를 대표하는 공간 중 하나다. 지난 2009년 초겨울, 그 곳에서 보았던 진귀한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보티첼리의 비너스 원화를 비롯해 그 시대 다수의 회화와 조각을 보여주는 특별전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스산한 강바람 속에서 외투를 여미고 발을 구르면서도 도시민들 수백명이 출입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울산지역에선 아무리 엄청난 공연이나 전시가 있더라도, 현장에서 장사진을 치는 일이 드문 시기였다.

▲ 슈타델미술관 지하의 가르텐할레(정원관). 자연채광을 십분 활용한 공간연출이 독특하다.

무엇이 그토록 이들을 이른 새벽부터 미술관 앞으로 몰려들게 한 건 지는 긴 대기시간 이후 전시장에 들어가서야 깨달았다. 원화가 주는 아우라도 멋졌지만, 한 점 한 점 작품을 대하는 표정과 자세에서 관람객 모두가 이 전시를 학수고대 해왔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비좁은 복도, 계단 위 카펫, 전시장의 의자는 손때가 그득했고 오래돼 보였으나, 불결하진 않았다. 아이들은 바닥에 엎드린 채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다. 몸이 불편한 노파 역시 지팡이를 짚은 채 작은 스케치북 안에 데생으로 명화를 옮겨놓기 바빴다.

▲ 대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2~3층의 전통적 전시공간.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다

지난달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그 곳을 다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어, 12년 만에 슈타델미술관을 방문했다. 긴 시간이 흐른만큼 미술관 실내외 공간에는 변화가 많았다.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전시 공간의 차별화였다.

슈타델미술관은 프랑크푸르트가 금용중심지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18~19세기 무렵 은행가이자 향신료 무역상인 슈타델이 1815년 자신의 예술회를 조직한 것에서 시작됐다. 그의 유산인 미술품이 지금의 미술관 자리에 전시된 건 1877년부터다. 이후 100여년 동안 독일의 가장 중요한 컬렉션 중 하나인 루벤스, 렘브란트, 뒤러, 세잔, 르누아르 등 고전적인 유럽 미술품을 주요 소장품으로 자랑해 왔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을 목격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20세기 현대미술까지 대폭 수용하여 선보이고 있었다.

▲ 대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2~3층의 전통적 전시공간.


◇혁신 위한 미술관장의 파격행보 주목

슈타델미술관은 20세기 이후 쌓이기 시작한 현대미술 소장품을 보여줄 공간이 부족했다. 이에 본 건물의 뒷마당에 해당하던 너른 부지를 전시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을 시도했다. 원래는 야외정원으로 활용되던 곳이었으나, 그 아래 지하공간을 확보하고, 자연광이 땅아래 전시공간으로 스며들도록해 세계 그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현대미술관을 새로 꾸미는 작업이었다. 미술관 확장에는 총 6900만달러(약 771억원)가 필요했다. 참고로 이 비용은 내년 1월6일 개관하는 울산 최초 공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의 개관비용과 맞먹는다.

오래된 미술관에 혁신적 공간을 제안하고 실행한 인물은 당시 막스 홀라인 관장이다. 경영학을 공부한 미술인답게 사업비 확보를 위한 그의 행보는 지금도 회자된다. 부족한 사업비 확보를 위해 전면에 나선 그의 공략은 슈타델미술관이 시민들의 것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이에 대한 확신이 들게끔 도시미술의 위상을 제안하여, 시민들 스스로 미술관의 혁신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 지하 정원관에서 현대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시민들 주인의식이 성공안착 제1조건

슈타델미술관의 전시실은 원래 각 방마다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전시실 이름을 정하고 있다. 시에서 지원받는 것보다 시민들의 기부로 만들어진 미술관이라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에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미술을 수용하기 위한 대공사도 이같은 시민들의 주인의식이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전 독일을 깜짝 놀라게 한 모금운동은 문자로 기부하기부터 장화신고 흙뜨기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2009년부터 시작돼 확장공사가 마무리 된 2013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리먼 브라더스 시태로 최악의 금융위기 속에서 미술관의 성공신화를 이끌었던 막스 홀라인 관장은 그 이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관장으로 자리를 옮겨,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미국 뉴욕을 방문했던 김정숙 여사와 방탄소년단(BTS)과 함께 우리 언론에도 모습을 비췄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시장의 파괴자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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