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상의 世事雜談(51)]K-문화예술과 U-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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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상의 世事雜談(51)]K-문화예술과 U-문화예술
  • 경상일보
  • 승인 2021.10.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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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얼마 전 모처럼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들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코로나 시절이라 좌석을 떼어놓았다 하더라도 500석 객석에 관객은 기껏해야 70명 정도? 그것도 너도나도 꽃다발을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 연주자들의 가족과 문하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연은 훌륭했지만 공연장은 쓸쓸했다. 한편 지난달엔 문화예술회관에서 인기 뮤지컬 공연이 있었다. 유명 주연배우들이 출연하기 때문인지 입장료가 꽤 비쌌음에도 공연 2주전에 이미 입장권은 매진되어 있었다.

이 두 개 공연장 모습의 극명한 차이에 대해 머리가 갸우뚱해졌다. 수많은 프로음악가들 중에서 수입이 보장된 인기 유명인은 극소수일 텐데,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무명프로들은 도대체 어디서 수입이 생기나? 프로 음악가란 음악이 취미가 아니고 직업인 사람이다. 일반직장인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과 경비와 노력을 투자해 프로의 경지에 도달한 그들이 좀 더 안정된 수입조건 아래서 연주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 떠나지 않았다.

‘빨리 망하려면 정치를 하고 천천히 망하려면 자식에게 음악을 시켜라’라는 말이 있다. 국회의원이 되고자하면 거액의 목돈이 들고, 음악 공부하는 데는 끊임없이 돈이 든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음악이란 일반적으로 대중음악보다 클래식음악이다. 음악으로 진로를 택한 전공생은 통상 예술고와 음대를 거친다. 재학 중에도 지속적으로 개인레슨을 받는다. 한 단계 더욱 성장하려면 미국, 이탈리아, 독일 등으로 유학하는 것도 특별하지 않다. 전력을 투구해야 하는 유학과정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벌기는 거의 상상하기 힘들며 당연히 부모의 등골은 휠대로 휜다.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 프로음악가가 되었다한들 모두가 정경화, 조수미, 조성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음대교수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요, 기껏 계약직으로 강의를 맡는 정도다. 음악교사 또는 시립·구립관현악단 단원이라는 자리라도 주어진다면 비유학파 프로로선 최선이겠으나 이 또한 문이 좁긴 매일반이다. 그러니 동네마다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음악학원과 방문레슨이 가장 일반적인 생계수단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음악가의 길이란 참으로 험난하고, 많은 경비가 들며,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 길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넘친다. 예술가가 부(富)를 좇으면 안 되며, 비록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고 교육시키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자식사랑은 진정 숭고하고 위대하다. 그러나 결국은 냉엄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투입된 시간과 경비와 노력이라는 입력(input)과 현실생활이라는 출력(output)사이의 괴리는 매우 커 보인다. 요컨대 연주로는 생활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는 과연 누가 메워야 하는가? 그들 스스로가 메워야 하는가 아니면 일정부분 사회의 몫이기도 한 것인가. 나는 후자로 본다.

우리나라에도 중앙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예술 활동에 대한 각종 지원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나 제한된 지원규모와 까다로운 사용수칙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 부과되는 의무공연…. 이러한 기존 프로그램들은 예술가와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키기에 턱없이 미흡하다. 그렇다고 모든 음악가들의 생활을 국가가 책임질 수도 없다. 독일의 경우, 평생수입이 보장되는 관현악단이 압도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무명프로들의 연주입장료조차 꽤 비싸게 책정되며 그래도 관객이 많다고 한다. 독일인들의 음악 사랑이 음악가 지원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구조인 것이다. 그렇다고 음악가들의 생활수준이 높다는 뜻은 아니며, 작금 독일인들도 음악전공을 꺼리는 분위기란다. 음대마다 유학생 의존도가 커지고 있으며 한국은 가장 주요한 유학생 파견국이란다. 결론은 음악 포함 예술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애정 증대만이 모든 예술 공연에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하는 길이며, 이것이야말로 근본적인 해법인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것이 길일 수밖에 없다.

BTS, 오징어게임, 미나리를 만든 예술가들이 우리 국민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한 수많은 무명예술가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도 알아야한다. 울산예술발전의 핵심요소는 시민들의 풀뿌리 관심이라는 일념 하에 자비(自費)로 지역 음악가들을 초청하여 매주 스몰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는 울산 B레스토랑 K대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래서 더욱 빛난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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