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태아를 바라보는 미국법의 두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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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태아를 바라보는 미국법의 두 시선
  • 경상일보
  • 승인 2021.11.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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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변호사

이번에는 기업법무에서 잠시 벗어나 사람, 정확히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해 우리와 다른 법제를 갖고 있는 미국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2021년 9월1일, 미국 텍사스 주에서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주법(약칭 Texas Heartbeat Act)이 시행되었다. 법 위반 시 최저 미화 1만 달러의 벌금형이 부과되는 이 법은,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살인에 버금가는 죄악으로 보아 금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정법을 두어서라도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보는 시민들과, 임신한 부녀의 자기신체에 대한 결정권이라는 인권으로서 오히려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보는 시민들 간의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 법은 시행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미국 법무부로부터 동 주법이 연방법과 연방헌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음을 이유로 연방법원에 효력정지 신청이 제기되었고, 연방항소법원의 결정을 거쳐 현재 연방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낙태를 둘러싼 문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공개적으로 찬반의견을 표시할 만큼 미국에서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이다. 태아를 생명으로 보아 모든 상충하는 다른 권리에 우선하여 법으로 보호할 것인가를 두고 미국의 각 주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해왔는데, 텍사스 주와 같이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로 공화당 지지가 우세한 주들(이른바 red states)은 낙태를 더 엄격히 법으로써 금지하며 태아(unborn child)를 살인의 객체로 보아 위반 시 그 법적 책임을 묻는 등의 입법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입법태도는 해당 법을 제정하는 공동체의 결단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 법들이 집행되는 현실에 있어서는 상상도 못한 엉뚱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지난 2018년 12월 미국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서 있었던 마샤 존스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존스는 같은 직장 동료인 에보니 제미슨과 평소 불화를 겪고 있었는데, 사건 당일 회사 밖 할인매장 앞에서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되자 곧바로 언쟁이 벌어졌다. 말다툼이 점점 격렬해지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제미슨은 소지하고 있던 총을 꺼내 경고의 목적으로 바닥을 향해 쏘았는데, 발사된 탄환이 튕겨 존스의 복부에 맞는 부상을 입게 되었다.

단순히 우발적인 총기사고로 보이는 이 사건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 데에는 아직 설명되지 않은 사실관계가 더 있는데, 당시 존스는 임신 5개월의 상태였으며 이 사고로 인해 유산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앨라배마 주는 태아의 생명을 출생한 자연인과 동일하게 법으로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을 관할하던 제퍼슨 카운티 검찰은 태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제미슨과 존스 모두를 우발적 살인(manslaughter)혐의로 기소하기 위해 대배심(grand jury)에 회부하게 된다. 중범죄(felony) 사건에서 검사의 기소여부를 사전에 판단하는 대배심은 이 사건에서 제미슨에 대하여는 일종의 정당방위 법리(stand-your-ground law)를 근거로 기소불승인 결정을 내렸으나, 존스에 대하여는 기소를 승인하는 초유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우발적 살인에 대하여 최대 20년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는 앨라배마 주법상 존스는 부상을 당한 피해자이자 유산으로 태아를 잃은 산모였음에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기막힌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임산부가 유산을 했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이 여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건발생 후 7개월 만에 앨라배마 주 검찰은 존스를 기소하는 것이 정의의 관점에서 최선의 선택이 아님(not in the best interest of justice)을 이유로 최종적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림으로써 사건을 종결하게 된다.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공동체의 법적 합의는 이처럼 도달하기도, 집행하기도 어렵다. 관련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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