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 길을 걸어 다녔다. 학교까지 가는 길은 적어도 두세 가지였는데. 아랫마을 송미와 걷기도 하고 현숙이와 같이 걸었다. 혼자이기도 했다. 비바람이 심한 날은 오분 거리에서 점빵을 하는 분순이 집에서 비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산 넘어 동네에 사는 동무들과 함께일 때가 많았는데. 하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 우리동네를 지나 친구집까지 갔다 오기도 했다. 중학교는 십리 밖이었다. 빨간 완행버스를 타고 다녔다. 앉아가는 날은 학교 가는 길이 더 멀었다. 돌아돌아 내가 탔던 정류장을 지나 학교에 도착하면 두 시간이 족히 더 걸렸다. 어느 토요일은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한 시간을 걷기도 했다.
우리동네에 자전거 타는 사람은 없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처음 탔다. 자취집 옆방에 사는 형의 자전거였다. 학교에서 멀기는 해도 따뜻한 시골길이 있던 마을이었다. 함께 방을 쓰는 행숙이와 걸어다닐 곳이 많아 산책으로 풍성했다. 처음 탄 자전거는 짐을 실어나를 수 있는 것이라 무거웠다. 그것을 타겠다고 덤빈 덕분에 논바닥에 여러 번 처박혔다. 짧은 시간에 배워 익히기엔 이십 대 몸도 이미 굳어있어 고단하고 한심했다. 제법 잘 타게 된 것은 선생님이 되고 나서였다. 이미 삼십 대 초반이었고. 경주로 수련회를 2박3일 갔다. 아이들이 수련기관에서 운영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동안 열두 명 교사들에게 제법 긴 시간이 덤으로 생긴 것이다. 마음 가벼워진 우리는 자전거를 타며 경주의 가을 한때를 누렸다. 동료들 덕분에 자전거 타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훈장처럼 며칠 절뚝거렸고 퍼렇게 든 멍은 더 오래 갔다. 그러나 이제 자전거 탈 줄 아는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언양읍성까지 왕복 14㎞에 도전했다. 대암교까지 26㎞는 넷이고, 선바위까지 40㎞에 도전하는 아이는 여학생 둘에 남학생 셋 모두 다섯이다. 14㎞에 도전한 일곱 아이들과 함께해도 괜찮다 여겼다. 내 자전거는 삐뚤거리며 나란한 줄에서 자꾸 흔들린다. 오후 일정을 핑계로 멈추었다. 들은 벼가 한창 익고 있다. 돌아오는 길도 만만하지 않았다. 택시를 탈까 말까. 겨우 학교로 돌아왔다. 들었던 멍이 열흘이 지나니 선명하게 드러났다. 언젠가 자전거 타기가 내 몸에 찰싹 달라붙을 것이다. 직접 낭송하는 시가 담긴 CD를 들으며 출근하는데. ‘칼을 들고 목각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나무가 몸 안에서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 촘촘히 햇빛을 모아 짜 넣던 시간들이 한 몸을 이루며/ 이쪽과 저쪽 밀고 당기고 뒤틀어가며 엇갈려서/ 오랜 나날 비틀려야만 비로소 곱고/ 단단한 무늬가 만들어진다는 것/ 제 살을 온통 통과하며 상처가 새겨질 때에야 보여주기 시작했다’(박남준의 ‘각’전문). 꼭꼭 씹어 듣는데 찐쌀 같다. 우러나오는 맛이 진하다. 몸에 익는다는 게 그런 것일까.
신미옥 울산고운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