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간의 휴가에서 돌아왔는데 별탈없이 사무실의 일이 잘 처리되고 있을 때 불현듯 ‘책임자가 부재중임에도 조직내의 업무가 잘 될 수 있다면 나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책임자 또는 리더인 자신이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거나 ‘자신이 없으면 오히려 일이 더 잘 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하는 상상에 이르면 갑자기 스산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자신의 존재가 공동체나 조직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고민은 아닐지라도 리더의 경우 한번쯤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 무익하거나 엉뚱한 발상은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감이나 지향점이 조직과 사회에 별로 도움되지 않을 수 있으며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매진하는 사람들 중에는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다 주기보다 부담을 주는 경우가 왕왕 있다.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열정으로 인하여 자신이 발산하는 부정적 영향을 인식하지 못한다. 특히 지도자의 경우 소속 진영에서는 무조건 지지할지 모르지만 과도한 확신과 이기심으로 인하여 그의 존재 자체가 부담을 넘어 해악으로 작용한다면 황당하지 않은가. 견강부회로 온갖 구실을 만들어내는 위선자라면 큰 일이다.
예전에는 어떤 일을 잘 했더라도 운이 좋았던 것이라면서 겸양하는 자세를 미덕으로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미덕은 사라진 듯하다. 자기 PR시대라고 하지만 자랑을 넘어 자만, 교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면 될 텐데 분식과 교언영색으로 허언을 남발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불편하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정말 실력 있고 인격을 갖춘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에 대해 그다지 내세우지 않는데 반하여 실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별 것 아님에도 마치 자신이 큰 역할을 한 것처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어려운 가운데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 놓거나 힘든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중에 선행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올바른 인격은 사소한 잘못에 대하여 미안해 하고 작은 지적이라도 감사해 한다. 교만하고 실력 없는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대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고 올바른 조언에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한다.
예로부터 자기 몸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겸양을 높게 평가하였다. 겸양을 도가에서는 만물을 길러주지만 공을 과시하지 않는 물에 비유하여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였다. 논어에서도 겸양의 리더십을 덕치라 하여 ‘가까이 있는 자는 기뻐하고, 먼 데 있는 자를 찾아오게 하는(近者悅 遠者來) 것’이라고 했다. 상대를 끌어당기는 힘은 자신을 낮추고 비움으로써 가능하다는 의미다.
겸손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실수를 줄인다. 대인관계에서 겸양은 신뢰감의 원천이 된다. 안정감을 가져다 주고 진실함과도 상통한다. 유비무환으로 어려움에 대비하게 만든다. 겸손한 사람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책임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거나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겸손함이 결여되면 책임감도 약하다. 쉽게 약속하면서 제도를 바꾸고 만든다. 무엇이든지 해낼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자만과 교만심의 발로다. 뻔한 사실을 두고 끝까지 우기는 태도는 겸손함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겸양의 리더십이어야 행복과 안녕을 보장해 줄 수 있다. 지도자의 자만은 모두에게 불행일 수 있다. 공공선을 추구하는 리더는 자신의 존재를 겸허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올바른 리더십은 겸양과 진실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연 조직과 사회내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유익한 존재인지 가끔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