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터키, 도루코, 돌궐 그리고 한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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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터키, 도루코, 돌궐 그리고 한류 미래
  • 경상일보
  • 승인 2021.11.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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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원 터키 국립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우리는 터키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터키를 일본어로 ‘도루코’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한때 ‘면도날’ 상표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나아가 한자어로 ‘돌궐’이라고 쓴다는 걸 알고는 더욱 놀랐다. 아니 터키가 돌궐의 후예들이었다고? 과연 그런가.

그렇다. 돌궐은 흉노의 일파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한나라일 때는 고조선과 흉노가 협력하는 것을 견제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려 단군 시절이다. 우리 삼국시대인 수나라와 당나라 시절에는 고구려와 돌궐이 서로 협력과 적대관계를 맺기도 하며 함께 흥망성쇠의 길을 밟았다고 한다. 돌궐은 6세기 당나라 때 동서로 나뉘며 세력이 약해졌는데 서돌궐이 지금의 터키로 변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 인연은 한국전쟁 때에는 2만명이 넘는 터키 군인들의 파병으로 이어지고 2002년 월드컵은 그야말로 형제의 나라 역사를 새로 쓰게 된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나 또한 그 형제이상으로 대해 준 터키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 일화 중 하나를 이야기한다.

내가 처음 터키에 간 것은 1994년이었다. ‘함무라비 법전’부터 가장 오래된 1만년전 차탈회익의 ‘지모신’까지 인류 역사의 보물이 가득한 앙카라 고고학 박물관에 갔을 때였다. 영어 가이드 명찰과 완장을 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한국 중에서도 남한에서 왔다고 하니 할아버지께서 ‘꽃피는 열여덟 분홍빛 내 가슴에 봄이 찾아왔네…’ 같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우리 가요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수원, 평택, 오산’ 등 자신이 주둔했던 지명을 읊조리며 눈물을 글썽거리신다. 아니 이런 상상못할 일을 맞닥뜨린 나는 지금도 그 장면만 떠오르지 그때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저 돈 아끼며 여행하는 젊은 배낭여행자라 따뜻한 차 한 잔, 밥 한 끼 사드리지 못했을 것만은 확실하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떨리던 목소리, 눈물짓던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뇌리에 맴돌았다. 어쩌면 그 인정 때문이었을까. 2000년도에 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에 한국학과를 설립하러 갈 기회가 왔을 때 나는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당연히 할아버지를 찾아갔고, 마지막으로 2008년에 찾아갔을 때도 할아버지는 박물관에 영어가이드 자원봉사하러 나오셨다. 이제는 더 이상 계시지 않을 그 가이드 할아버지가 나에게는 터키의 첫 인상 그 자체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두 번째 나의 터키를 그리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새학기에 스무살 성년이 된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에 20년만에 복귀했다. 학부에서 ‘말하기’와 ‘한자’, 대학원에서 ‘한국철학과 삼국유사’와 ‘훈민정음 문헌 월인석보’를 강의한다. 이 젊은 청년들이 어떻게 한국어문학을 넘어 한국학을 전공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더욱이 이슬람교가 99%인 나라가 아니던가. 한국학과에 들어 온 동기를 물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한국의 노래를 듣고 혼자 좋아하고 독학하며 오랜 시간 한국학과에 들어오는 목표를 세우고 공부했다는 학생이 절대 다수였다.

가슴이 뭉클하다. 우리가 미국과 유럽 일변도의 나라들만 상대하며 그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고 있을 때 조용히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이 터키를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국가의 젊은이들이 한류 확장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한국 노래를 연습해보라고 유튜브 링크를 알려주고 부끄러움 많은 학생들을 위해 먼저 내가 잘 부를 리 없는 노래를 녹음해 업로드했다. 그랬더니 한 두 명이 용기 내서 부르기 시작하고 나아가 몇몇 학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도 되는지 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터키 학생이 부른 건지 한국 가수가 부른 건지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말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는 1학년 학생들의 노래 발음이 어찌나 정확한지 우리는 조만간 ‘한국학과 K-POP 노래대회’를 열기로 했다.

터키와 한국에는 이렇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먼 옛날 혈연이었든 동맹이었든 같은 기마민족이었든 서로를 좋아하고 끌리는 이 무엇. 이제는 우리가 손내밀고 배우고 알아야 할 다정한 이슬람 문화가 다가오고 있다. 차세대 한국학의 화두이자, 이미 우리 편인 이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한류 미래의 든든한 동량이다.

정진원 터키 국립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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