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학구열은 높다. 덕분에 국민 개인의 지식 수준이 높아졌고, 국가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6·25 전쟁 후 막막했던 시절에도 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려고 애를 썼고, 이 때 교육받은 세대가 훗날 산업역군으로 성장해 한국을 발전시켰다.
학업에 열중하는 이유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이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도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여주듯 예나 지금이나 학업에는 인생이 걸려있다. 요즘 시대에는 입시가 여기에 해당된다. 필자가 중등 교사인 관계로 입시 현장을 많이 지켜봤으니 잠시 울산의 입시에 대해 몇 자 적어보겠다.
1968년에 전국적으로 중학교 입학시험이 사라졌다. 56년생 이후의 학생들은 첫입시 지옥에서 벗어났지만, 이 때 국민교육헌장이 등장하며 또 다른 지옥을 선사했다. 매우 긴 글을 학생들이 달달 외워야했고, 교사들도 채점을 위해 강제로 외웠다. 회사에서도 징계 수단으로 활용되다보니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문구는 애국가처럼 모두가 아는 구절이 되었다.
1973년부터 고입에 연합고사가 도입됐다. 지금의 60대 초반 어르신들이 첫 대상자였다. 울산시는 연합고사 180점, 체력장 20점으로 합 200점 만점제를 사용했다. 지금의 40~50대가 연합고사를 대비한 모의고사를 많이 치렀는데, 1점이라도 떨어지면 가차없이 매타작을 당했고, 재수하기 싫어서 중학교 3학년 내내 죽도록 공부했다. 1등 학생이든, 10등 학생이든, 30등 학생이든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2000년 즈음 울산에 고교 평준화가 도입되면서 고교 서열이 폐지되었다. 03학번에 해당되는 84년생 학생들이 첫 수혜자였다. 그 동안 고교 입시에 목숨 걸었던 이유는 단순한 진학 차원을 넘어서 학벌, 인맥, 평판, 취업까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3학년 부장교사는 교장·교감·학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능력자였고, ‘학교의 꽃’이라 불렸다. 요즘에도 고3 부장, 중3 부장은 학생들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입시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자 전국적으로 연합고사가 차츰 사라졌다. 울산이 연합고사 체제를 마지막까지 유지했는데,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입시를 매개로 생활지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중3이다. 고등학교 합격해야 한다. 떠들지말고 공부하자”는 말에 학생, 학부모, 교사의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를 바탕으로 신뢰있는 생활지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2002년생 학생들이 2017년 12월에 울산에서 마지막 연합고사를 쳤고, 2003년생이 중3이 된 2018년부터는 연합고사 없이 내신성적으로 고입을 치르고 있다.
얼핏 보면 부담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겠지만 세상에 쉬운 입학시험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입시 수험생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김경모 현대청운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