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철이 오면 늘 불편하다. 경직된 신념과 거짓 정보에 노출된 주변을 보아 온 때문이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지금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실을 조작하고 적개심을 증폭시키는 작태가 심각하다. 누가 주도하고 누가 편승하는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유가 무엇이든 국민 다수가 ‘정권교체’를 원하고 있다. 야권의 윤석열 후보가 ‘정치 초보’임에도 가장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정권교체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주된 이유도 그가 문재인 정부에 정면으로 맞섰다는 서사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후보의 ‘매타버스 민생투어’ ‘이재명의 민주당’ ‘청년과 대화’ ‘큰절’ 등이 민심의 변화를 자극한 것인지 윤석열 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 후보의 ‘개 사과’를 비롯한 반복된 낯선 언행과 선대위 구성 잡음이 국민에게 피로감을 주자 야권이 바싹 긴장하는 모습이다.
대선은 나라와 국민이 처한 역사적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실현 가능한 진로를 모색하는 창조적 광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야권의 분발이 요구되는 법이다. 정권교체의 대의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련하여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첫째, 윤석열 후보는 시대가 요청하는 국정 운영의 ‘줄기와 가지’를 제시해야 한다. 시민의 박탈감과 분노에 편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법과 원칙’이나 마치 조국의 덫에 걸린 듯한 ‘공정과 상식’ 정도로는 이재명 후보의 현실적 비전과 실용적 전략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대선을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절체절명의 내전”으로 보거나 “정치 질서를 파괴한 이념 권력에 자유민주주의를 맡길 수 없다”라는 식의 낡은 ‘신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절망적일 수 있다. ‘시대의 끝자락에 매달린 처지’라고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재명 후보의 행보로 보아 야권의 정권교체 구도는 희석되고 민심이반이 뒤따를 것이 뻔하다.
둘째,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국제관계에서 우리의 외교적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 여권은 만만치 않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20년 넘게 시대의 흐름을 좇아 한반도의 전략적 지형을 바꿔왔다. 반면 야권은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국내외 세력과 연계해 왔다. 그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사실 본격적인 북방정책은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박정희 정부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으로 처음 시도했다. 야권이 열등감이나 적개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윤석열 후보는 냉전적 망탈리테에서 벗어나 박정희와 노태우의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대안적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다수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셋째, 후보들의 치부를 들추는 전략을 접고 현실적인 개혁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 ‘대장동 게이트’ ‘살인자 변호’ ‘고발 사주’ ‘본부장’ 등 수사 중인 의혹이 뜬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이재명 후보 윤석열 후보 둘 다 혹은 한 명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그렇다고 확인할 수 없는 일을 두고 ‘감옥에 가지 않을 후보’를 제1의 선택 기준으로 삼자는 주장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윤석열 후보는 조속히 선대위를 ‘미래지향적으로’ 꾸리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참신한 정책을 내놓고 상대 후보와 겨루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대선이 여당에는 성찰과 변화의 계기를, 야당에는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는 축제의 장이 된다면 시민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꿈꾸는 삶을 설계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일각에는 세뇌당한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파당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사실을 조작하고 선동을 일삼는 자들이 엄존한다. 민주시민은 그들을 지켜보고 기억하고 심판할 것이다.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