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현장에 가면 ‘안전제일’이라는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말이 생기게 된 시작은 이렇다. 1900년대 미국의 US스틸이라는 철강회사에서 근로자 한 명이 작업 중에 사고로 죽었다. 그 회사 사장이 문상을 가게 됐는데 유족 중의 아이 하나가 “사장님 회사의 직원은 모두 몇 명입니까?”라고 물었다. 사장이 “만 명쯤 된다”고 하니까 아이가 하는 말이 “사장님은 오늘 만분의 일을 잃었지만 우리가족은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사장이 이후 ‘안전제일’을 최고의 회사방침으로 정하면서 이 문구가 미국은 물론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2016년에 탐사기획 ‘돌직구’ 방송을 하면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인터뷰가 있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당시 29살의 젊은 근로자가 작업 중 사고를 당해, 한 달 가까이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결국 숨지고 말았다. 상주(喪主)는 다섯 살과 네 살인 아들 그리고 그가 사고 당한 후 태어난 강보에 싸인 딸이 있었다. 고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한 미망인은 이렇게 말했다. “애 아빠가 딸을 못보고 갔잖아요, 그 혼이라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마음에 차마 안구 기증은 할 수 없었어요”
2015년에는 울산의 한 화학공장에서 폐수집수조 공사를 하다가 집수조 내 가스가 폭발하면서 6명의 협력업체 근로자가 희생됐다. 그런데 사고 당일, 현장을 촬영한 방송영상에는, 마지막 실종자가 집수조 안에서 발견됐을 때, 한 아주머니가 사고 현장 밖에서 격하게 고함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내 아들 몸에 손대지 마!”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아주머니는 그 날 희생된 안전요원의 어머니였다. 아들은 대학생이었는데 파트타임으로 안전요원 일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아들이 마지막 근무하는 날이었다.
안전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2009년, 미국 뉴욕에서 여객기가 이륙하자마자 새떼와 충돌하면서 엔진이 전부 꺼졌는데, 기장이 허드슨 강의 강물 위로 여객기를 무사히 착륙시켜 승객과 승무원 155명이 무사히 살았다는 영화가, 바로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생존 승객들이 당시 자신의 기내 좌석번호를 말하는 장면과 함께 “생존자수 155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들의 아내와 아들, 딸, 부모와 형제 등 다른 사람을 함께 생각한다면 엄청난 숫자가 된다”고 말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지난해 한해 대한민국에서 산재로 사망한 사람이 2062명이다. 이들의 부모와 형제, 가족들의 숫자를 대입해 본다면 산재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의 숫자는 수 만 명이 될 것이다.
산업재해와 관련해서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한 건의 사망사고가 생길 때는 그 이전에 29건의 사람 다치는 인명사고가 있고, 그 이전엔 300건에 이르는 아차하는 사고가 있다는 것이다. 이 하인리히 법칙은 세계적으로 안전사고와 관련해서 가장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사고의 비율이다. 하인리히 법칙이 말해 주는 것은 원인을 찾아서 개선하면 사망사고는 얼마든지 막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29명의 다치는 사고조차 다 덮어버리는데 300건의 다치지 않는 사고는 누가 기억조차 하겠는가?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노동단체는 처벌기준이 약하다고, 사용자단체는 너무 가혹하다고 불만들이 많다. 한국은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는 나라라고 간혹 선진국들이 비꼬기도 한다. 최저임금은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잣대를 의미하듯이 중대채해처벌법 또한 우리 사회가 견지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시하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강조되고 더 튼튼하게 지켜져야 할 것이다.
이영훈 울산MBC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