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우 경제옹알이(11)]“나는 노무현도 좋고 박정희도 좋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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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우 경제옹알이(11)]“나는 노무현도 좋고 박정희도 좋던데”
  • 경상일보
  • 승인 2021.12.0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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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에서 교수를 할 때의 일이다. 동네에 한인 식품점이 있었다. 식품점 주인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이었다. “나는 노무현도 좋고 박정희도 좋던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많이 배웠다. 친하게 지내던 분이었다. 그래도 미국 대학에서 교수하는 사람이니, 정치에 대해서도 잘 알겠거니 하고 생각을 물어보신 것일 터였다. 물어보신 것은 주인 아주머니였지만, 크게 배운 것은 나였다. 노무현은 민주화를 잘해서 좋고, 박정희는 경제를 잘해서 좋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많이 공부했다는 나도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노무현을 좋아하면 박정희를 싫어해야 하고, 박정희를 좋아하면 노무현을 싫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 다 좋아하는 것은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노무현과 박정희를 비교해서 좋은 대통령과 나쁜 대통령이 누구인지를 정하고 그 논리에 따라 현재의 정치 쟁점을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양쪽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양비론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둘 다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정치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정치는 권력과 관계되어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와도 관련이 되어있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에게는 노무현도 좋아하고 박정희도 좋아한다는 선택지는 현실적으로 없다. 선거에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고, 졌지만 잘 싸웠다는 것은 정치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의미가 크다.

적군과 아군밖에 없는 세상은 정치인들에게 유리하다. 내가 좀 잘못을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우리 편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상대편에게는 좋은 일이 되니, 내가 잘못을 해도, 상대편은 더 나쁜 사람들이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들도 어쩌면 정치인들의 논리에 익숙해졌고, 강요당했다. 정치와 선거는 스포츠와 같은 성격이 있어서 승리가 주는 동질감과 고양감이 매우 크다. 내가 투표한 사람이 이기면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팀이 이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정치와 선거가 스포츠와 비슷해지면, 어느 순간 논리와 상식, 그리고 국민은 그리 중요해지지 않는다. 한 명의 대통령에 대해 좋게 평가하면 다른 대통령의 나쁜 점을 강조해서, 우리 편이 더 좋다는 결론을 꼭 내야 한다. 한 스포츠팀의 팬들이 다른 팀의 팬들과 벌이는 논쟁과 비슷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팀이 더 좋다는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고, 상대방의 나쁜 점만을 찾아내고 강조하면 된다. 우리 편의 잘못이 보여도 그런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논리로 넘어간다. 내가 무능력해서 잘하는 것이 없어도 상대방의 잘못만 찾아내면 된다. 참 편리하다.

“나는 노무현도 좋고 박정희도 좋던데”가 널리 퍼지면 정치인들은 더 힘들어진다. 이제는 누가 무엇을 더 잘했는가로도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이 더 많으니, 나쁜 대통령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치워 버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과거에는 말로만 상대방의 장점을 배우겠다고 하고, 실천은 하지 않고, 상대방의 나쁜 점만 찾아내면 끝났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쁘다고 평가한 대통령의 장점도 배워서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성장과 복지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성장과 복지 둘 다 중요하다는 대답을 하게 된다. 성장과 복지 중 하나만 중요하다고 답하면,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게 되어 표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적인 정답이지만 현실적으로도 권장되는 선택이다. 질문의 핵심은 성장과 복지 사이의 비율을 5대 5로 할 것인지, 9대 1로 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지, 10대 0으로 할 것인지, 0대 10으로 할 것인지가 아닌 것이다. 질문은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성장과 복지 중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택해야 하는 것은 비중이지, 하나는 좋고 다른 하나는 나쁘다가 아니다.

하지만 정치에서 국민들은 항상 일방적 선택을 요구받는 측면이 있다. 노무현과 박정희 중에 누가 더 나쁜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당해 왔다. 상대방이 잘한 것이 2개 있으면, 잘못한 것을 5개 찾아, 2대 5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잘한 것이 2개 있지만, 잘못한 것 5개를 찾았으니, 잘못한 것 2개로 잘한 것 2개를 없애버린 뒤에 0대 3을 만들었다. 잘한 것도 있지만 잘못한 것이 더 많고, 정산을 하고 나면 잘못만 남으니, 나쁜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은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앞으로는 나쁜 점을 찾아내는 정치가 아닌 잘한 것을 중심으로 평가받는 정치도 자리잡길 기대한다. 잘한 것 중심으로 승부하게 된다고 해서, 나쁜 짓을 해도 다 용서된다는 말이 아니다. 잘한 일은 잘한 일대로 평가받고, 잘한 일과 나쁜 짓을 정산한 뒤에도 평가 받아야 한다. 평가의 기준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 유리하다. 예전에 잘한 일과 나쁜 일을 정산하는 방식으로만 평가했을 때는 정치인들이 유리했다. 상대방의 나쁜 점만 찾아내면 문제가 쉽게 풀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상대방이 나쁜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해진다. 정치인은 불편해지겠지만 국민에게는 더 좋아진다. “노무현도 좋고 박정희도 좋던데”의 핵심은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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