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감염병의 시대, 노동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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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감염병의 시대, 노동의 가치
  • 경상일보
  • 승인 2021.12.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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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변호사

‘코로나의 역설’이라는 말은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감염병으로 인해 위축되었던 경기가 한꺼번에 살아나는 데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역설을 겪고 있는 산업 분야와 지역들 가운데, 미국의 서비스업 부문에서 최근 법적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지난 10월, 미국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 4명은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오후 9시까지 일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같은 달 초 위스콘신 주에서 14세와 15세 청소년들이 밤 11시까지 일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이 상원을 통과한 것과 내용상 유사하다. 둘 모두 최근 극심한 일손 부족을 겪고 있는 산업의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등장한 법안들이다.

미국 중서부 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러한 입법 동향이 주목되는 이유는, 미국에서 아동-청소년 노동은 연방법 차원에서 규율되는 사안으로서 각 주들이 아동-청소년 보호 관점에서 연방법보다 더 엄격한 수준의 법제를 운영해오던 기존의 입법기조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우리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미국 공정노동기본법(Fair Labor Standard Act)상 14세, 15세 청소년은 하루 8시간(등교일은 3시간)을 초과하여 일할 수 없고, 하루 중 오전 7시 이전, 오후 7시 이후에는 노동이 금지되는데, 이 연방법과 양립할 수 없는 법안이 잇달아 주 의회에서 발의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법안 발의에 참여한 케니 유코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은 비판여론을 의식하여 동 법안이 청소년들에게는 저축의 기회를 주고, 자동차 등을 구입할 재원을 마련하며, 기술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식당들이 정규시간을 채워 정상영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으나, 지역언론을 비롯한 노동단체들은 이러한 대응이 근시안적임을 비판하고 있다. 누구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노동력 부족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코로나의 역설’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구조적인 원인들이 있음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10월14자 기사를 통해 갑작스레 생겨난 것 같은 지금의 노동력 부족사태의 원인은 근로자들의 자녀들을 돌보는 어린이집 보육노동자들의 감소, 코로나로 인한 국경폐쇄 및 이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감소, 노동현장에 여전히 존재하는 코로나 감염위험, 일시적으로 늘어난 실업수당, 그리고 변이바이러스 등으로 인한 코로나 재확산에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일부 주에서 인력부족의 타개책으로 제시한 야간시간 청소년 노동은 당장 부작용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본 원인을 무시한 채 함부로 처방된 대증요법에 가깝다.

더욱이 관련 법안을 최초 발의한 위스콘신 주의 최근 10년 간 입법 행보는 최근의 움직임에 일정한 목적과 지향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공화당 주도의 관련법 개정 결과 위스콘신 주에서는 아동-청소년 노동에 규정된 시간제한이 철폐되었고, 부모 사전 동의요건이 삭제되었을 뿐 아니라, 지난 2017년에는 관련법 전체에서 아동 노동(child labor)이라는 용어를 미성년자 고용(employment of minors)이라는 말로 대체함으로써 연소근로자에 대한 법적 관점이 근본적으로 뒤집어지게 되었다.

노동력 부족이라는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미국 내 일부 주들은 더 많은 비용을 수반하는 보다 안전한 노동환경 대신, 더 적은 비용으로 투입할 수 있는 미숙련 노동인 아동-청소년 노동이라는 선택지를 만들어냈다. 사회학자 라즈 파텔과 제이슨 W. 무어는 이를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저렴한 노동’으로 설명한다. 노동법상 아동-청소년 노동에 대한 규율이 오늘날처럼 규정되는 데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의 법안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피해야 하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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