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네가 안 오니 내 발로 찾아가려 했지.”
낯선 오층석탑이 점잖게 꾸짖는다. 얼른 허리를 굽힌다. 참 이상하다. 분명 근처의 대청호도 여러 번 다녀갔고 지척에 있는 보은도 자주 찾았는데 계산리 오층석탑만 비켜갔다. 답사모임의 일정표에도 늘 빠져있었다. 전국의 탑 순례를 나선지 이십여 년, 수시로 만나는 탑이 있는가 하면 두 세 번은 기본으로 휘더듬었다. 그러나 고려시대 만들어진 계산리 오층석탑은 처음이다. 높이 5.65m, 상륜부까지 있었다면 거대한 탑이었을 것이다. 긴 그림자를 끌고 탑이 뚜벅뚜벅 다가오는 것 같아 주춤 몸을 사린다. 그것도 잠시, 나도 넓은 풀밭 위를 성큼성큼 걸어가 바짝 다가선다. 오후의 햇살을 담뿍 받아 붉게 물든 탑이 온 몸으로 반긴다.

청주의 동쪽 관문이라 불리는 피반령. 이 험준한 고개 아래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장터가 열렸다. 바로 말미장터다. 골목마다 주막이며 마구간이 즐비할 정도로 큰 규모였지만 이제는 ‘말미장터’라는 마을 이름만이 남았다. 청주와 보은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통로인 피반령에 터널이 뚫리고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옛길은 가지 않는 길이 되었다. 가덕면 계산리, 말미장터마을은 한적하다. 장터의 남쪽 언덕 위에 있는 잘 생긴 오층석탑도 한가롭다. 1단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지붕돌의 체감률이 정연하고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지는 우수한 작품이다.
그 옛날 피반령을 무사히 넘어 온 사람들은 장대한 탑 앞에서 몸을 낮춰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다. 그런 다음 장터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고개를 넘어가는 장사치들도 무탈한 여정을 기원하며 쭉 뻗은 진리의 탑을 향해 경배를 올렸다. 보물 제511호 계산리 오층석탑은 그 시절 거칠고 험한 고개를 넘는 사람들에게 자비광명이었다.
장터국수라도 먹어볼까 마을을 어슬렁거린다. 주막은 간데없고 200년이 넘은 팽나무가 “여보게 쉬어가게.” 아름드리 그늘을 내어준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