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우리 시대의 진정한 리더 ‘어비맏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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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우리 시대의 진정한 리더 ‘어비맏이’를 위하여
  • 경상일보
  • 승인 2021.12.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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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원 터키 국립 에르지예스 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월인석보>나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책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세종대왕과 아들 세조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조선시대 최고 걸작인 이 책의 본문을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우리 인문고전의 금자탑인 걸작을 종종 ‘국민착각의 책’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이름만 알면 다 안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영어를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 해도 600년전 현대국어와 비슷한 우리 말에 무지한 것은 아무렇지 않아 하니 말이다.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에 지은 책 <석보상절> 6권에 ‘어비맏내’라는 말이 나온다. ‘어비’는 ‘아비’와 같은 말이요 ‘맏’은 ‘맏이’ 곧 첫째나 으뜸을 뜻하는 말이다. ‘내’는 지금의 ‘민지네 집’과 같이 ‘네’로 쓰이는 가족이나 무리를 나타내는 복수 접미사이다. 곧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집단의 우두머리들이라는 뜻이다. 되살려 쓰고 싶은 순 우리 말 단어인데 외래어 ‘리더’대신 쓰면 좋을 말이라 생각된다.

이제 우리는 곧 새로운 나라의 ‘어비맏이’를 뽑아야 한다. 인문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권력과도 전혀 관계없는 분야여서 평생 정치와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반드시 나의 한 표를 행사할 것이고 그 한 표를 행사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데 고민이 깊다. 나의 좌우명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 차선이 아니면 차차선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 후보들은 그 반대인 면모들이 부각되어 어렵다는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우리 일반 국민 중 어느 누가 후보로 나가도 부정적인 여러 사건으로 얽히고 설킨 후보들보다는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심없이 집단지성의 힘으로 우리는 고비마다 역사를 새로 쓰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온 국민들이 아니던가.

우리 국민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이다. 자수성가란 대단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이 곳에서 어떻게든 살아 남아 나의 가난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고 나의 무지를 자식에게만은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한 절대다수의 국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자식 세대에 속하는 나는 조부모와 부모의 가난과 고생을 보며 자랐고 그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원없이 공부하고 글로벌 세계를 경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자식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몇 년전 북유럽의 헬싱키대학에서 열리는 한국학 학술대회에 간 일이 있다. 거기서 두 가지 사실이 인상 깊었다. 대학원을 월급에 집까지 제공받으며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하나요, 두 번째는 노약자를 위해 특화된 트램과 버스같은 대중교통 시스템이었다. 전차와 버스가 휠체어와 유모차가 가장 가운데 좋은 자리에 쉽게 타고 내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유독 젊은 부부의 유모차가 많이 보이고 노약자나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는 30년전 1991년에도 이 나라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주변의 다른 스웨덴이나 덴마크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보였고 사실 그러하였다. 한 세대가 지나고 나니 이웃 나라보다 쾌적하게 발전된 모습으로 활기가 넘쳤는데 궁금해 조사해보니 출산과 교육정책이 정말 잘 돼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인구는 무섭게 줄어들고 25년 안에 대학의 절반이 사라지는 위기에 처해 있는 대한민국. 수치상으로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한류는 세계 문화 사조로 자리매김 중이라고 할만큼 누구나 좋아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여기에 어버이의 마음으로 정치를 하여 아이를 낳고 싶은 곳, 교육을 원하면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 주는 곳, 전 정권처럼 ‘인문학의 융성’이니 하며 인문학자는 홀대하고 정치꾼들이 그 예산을 착복하지 않는 나라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대선 주자들이여, 대권을 얻고 싶은가. 600년전 왕들이 인생을 걸고 만든 문자 훈민정음으로 쓴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를 ‘어비맏이’의 마음으로 정독하고 그 의미부터 새길 일이다.

정진원 터키 국립 에르지예스 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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