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29)]버지니아 식민지의 실패와 성공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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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29)]버지니아 식민지의 실패와 성공 스토리
  • 경상일보
  • 승인 2021.12.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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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

한국인이 중국 <삼국지>와 일본 <대망>을 읽는 목적과 같이, 미국 역사속 실패와 성공 스토리를 알아야 한국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미국의 정신문화 핵심을 알기 위해서는 버지니아의 과거와 현재를 반드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버지니아 주는 21세기 현재에도 미국정치의 중심추이며, 백인-비백인간 문화전쟁의 현장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국이 청교도가 세운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청교도가 미국에 도착한 것은 1620년인데, 그 이전인 1607년에 버지니아 체사피크만에 영국은 북아메리카 최초의 식민도시 제임스타운을 건설하게 된다. ‘제임스’는 이곳 허가권을 발부한 영국왕의 이름이다. 그러하니 이 도시는 ‘왕의 도시’인 셈이다.

1607년 영국왕이 정착민을 보내기 시작한 이래 아메리카 식민지 초기경영은 녹록치 않았다. 무서운 것은 굶주림, 질병과 원주민의 공격이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존 스미스 선장이 지도자로 선출됐다. 그는 정착민들에게 신분에 관계없이 열심히 일하라고 명령했다.(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He who does not work, will not eat) 그리고 일한 성과에 따라 식량이 지급됐다. 여기에서 미국인의 정신문화 가치들이 잉태됐다.(신분을 넘어선 수평적 인간관계, 실용주의, 민주적 선거, 자유기업 사상 등) 스미스는 원주민과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추장 파우하탄의 딸 포카혼타스가 영국인 담배업자 존 롤프와 결혼함으로써 원주민과 평화가 잠시 찾아왔다. 원주민은 담배재배법을 백인들에게 전수했고 정착민들은 담배 재배에 성공했고, 1614년에는 담뱃잎을 영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위기 속에서 제임스타운을 살려낸 것은 담배였고, 이는 원주민과 쌓은 평화와 우정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인은 ‘버지니아 슬림’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백인들은 대체로 원주민에 대해 무지했고 백인 우월 태도를 고집했다. 영국 정착민들은 원주민에게 영어와 신사에티켓을 가르치려 했다. 영국 왕이 회사에 준 특허장(charter)에는 정착민들이 원주민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킬 의무가 있었다. 회사 주주들은 아메리카의 금, 모피 등 경제이익만을 챙겼다. 상호 존중 없이 타인에게 종교를 강요하고 경제적 이득에만 혈안이 된 이들에게 파국이 다가왔다.

1610년 이곳에 심각한 기근이 닥쳤고 500여 명으로 늘어나던 정착민은 개, 말, 쥐와 가족의 시체까지 먹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파우하탄 추장이 죽자 평화가 깨질 상황이었지만 이를 잘 관리하지 못했다. 원주민의 호의에도 땅 뺏을 궁리만 하던 백인들에게 재앙이 다가왔다. 1622년 원주민은 제임스타운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하여 340명의 정착민을 살해하자 식민지는 와해됐다. 제임스 1세는 자국민 철수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버지니아 투자회사의 최초 식민지경영은 실패했고, 버지니아는 왕의 직할 식민지가 됐다. 버지니아 땅에 번영은 쉽게 오지 않았다.

파우하탄 족과의 전쟁은 지루하게 지속되었으나, 정착민들은 유럽의 담배수요가 증대하자 대농장들(plantations)을 빠르게 재건했다. 담배산업의 지속적 성공과 원주민 격퇴로 1625년 이후 버지니아 식민지의 밝은 미래를 확보하게 됐다. 버지니아 식민지의 성공스토리는 미국 건설의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신세계’는 신분이 낮고 경제적으로 빈궁했던 정착민들에게는 고국 영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사회적 경제적 진전을 보장했다. 한편 식민지 건설의 다른 성공요소인 정착민들의 원주민 토지 침탈과 대농장에 강제로 팔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노동착취 문제는 화려한 경제성장의 어두운 뒷면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택하는 미국과 한국사회의 커다란 짐으로 남아 있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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