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전선언에 대해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 종전을 하려면 개전, 전투, 피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데 근본적인 고민을 듣지 못했다. 반성이 있어야 같은 아픔의 반복을 막는다. 휴전협정에 패싱된 남한이 당사자로서 협정문에 잉크를 남기는 것은 의미가 크다. 하지만 전쟁의 후유증 특히 한민족이 서로 공격한 앙금이 해소되지 못했다. 당연히 남북한은 한손은 대치관계 또 한손은 협력교류관계의 이중적 지위를 견지하고 있는 불편한 관계에 있고. 주변국 중 일본은 종전반대 입장인 것으로 보이고, 미·중·러는 외교적 레토릭(rhetoric)을 구사중이다.
전쟁으로 패권을 잡은 나라들을 살펴보자. 진(영정), 한(유방), 수(양견), 당(이연), 송(조광윤), 원(징기스칸), 명(주원장), 청(누루하치) 등등은 무력을 동원한 중국의 나라들이고 고구려(주몽), 백제(온조), 발해(대조영), 고려(왕건), 조선(이성계) 역시 무장이 세운 나라들이다. 미국도 독립전쟁을 통해 생겼다. 대부분의 나라는 칼로 세우고 붓으로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으니 역사는 무와 문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가르친다.
국방백서가 공개될 때마다 주적 논쟁이 일어난다. ‘주먹은 피할 수 있어도 링은 피할 수 없다’ 복서(Boxer) 조 프레이저가 한 말이다. 한민족을 아바타로 삼아 한반도를 전쟁의 링으로 만든 진짜 주체가 누구일까? 어리석게도 링 위에서 동족간에 총을 쏘고 칼로 찌른 기억만이 생생할 뿐, 국제적 냉전의 구조적인 대리전에 대한 깊은 성찰을 기대하는 것은 공염불인가. 고통의 직접성 때문에 눈 앞의 가해자에 대한 복수심만 있지, 간접적인 구조적 국제역학의 인과(因果)에 대한 담론은 들은 바 거의 없다. 국민 대부분은 국제정세에 눈이 어두웠던 구한말 쇄국정책에 대하여 비판한다. 하지만 광성보와 초지진에서 창으로 대포와 겨루던 때를 타산지석으로 삼자.
우리의 주적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 큰 것만 추려보면, 2000년 전 조선(朝鮮)에 침략한 양복과 순체, 고구려와 동북아 쟁패를 다툰 수 양재, 당 태종, 고려에 침공한 몽고, 거란. 이런 나라가 그 때는 주적이었다. 후조선(後朝鮮, 이성계가 세운 나라)의 일이니 좀 더 상세히 아는 임진왜란의 일본, 병자호란의 청, 병인양요의 프랑스, 신미양요의 미국, 거문도를 불법 점유한 영국, 경술국치를 안겨 준 일본, 6·25 전쟁의 소련·중국·북한 이러한 나라들이 한반도라는 링 위에서 포와 폭탄을 쏟아 부었었다.
링 위에서 코피 흘리면서 주먹을 교환하던 나라들이 서로 우방이라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2차대전 때 원자폭탄을 얻어 맞은 일본은 미국과 밀월관계이고, 패전국 독일, 이탈리아도 미국과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도 매 한가지이다. 전쟁의 상대방이었던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맞잡고 악수하면서 무역대국의 기적을 이루고 있다. 영원한 적은 없다.
그러나, 딱 한 곳. 북한만은 주적(主敵)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말로는 한민족이고 헌법에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헌법 제66조 제3항)라고 적어 두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하여 선서(헌법 제69조)까지 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묵혀 둔 역사책을 꺼내본다. 당나라가 신라와 손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하고 신라왕을 계림도독부의 지방관으로 삼았다. 그 후 당나라가 신라를 지배하려는 속셈이 노골화되자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에게 우리는 원팀(One Team)라고 외치면서 당 점령군과 전쟁을 치렀다. 역사는 윤회하는 것. 종전하자. 통일하고 재건하자. 이 땅 5000년 한민족이 아프다!
전상귀 법무법인 현재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