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열정이 식은 뒤 사랑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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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열정이 식은 뒤 사랑의 진화
  • 경상일보
  • 승인 2021.12.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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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료실 창밖의 삼산로 가로수의 몇 개 남은 잎사귀들은 찬바람에 떨고 있다. 해가 지고 스산한 거리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행인들은 옷깃을 여미며 걸음이 빨라진다. 가족과 함께 하는 뜨끈한 아랫목은 고단한 하루의 몸과 마음을 보듬어 줄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하는 이웃도 더 많아지는 듯하다.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견디다 이혼하고 어린 자식들과 살고 있어요. 이혼판결에서 결정된 생활비를 주지 않아 생계가 곤란한데, 그 인간은 재혼해서 호의호식하는 것을 보니 분해서 더 우울해요.”

이런 남자와 결혼했었던 것을 후회하는 여성을 보며 인류 역사에서 남녀의 본성을 생각해본다.

앨런 밀러와 가나자와 사토시의 책 <진화심리학>은 사랑과 결혼을 인간본성의 진화 차원에서 재미있게 설명했다. 남녀관계는 남성이 주도하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랑(섹스)과 결혼은 여성이 선택의 키를 쥐고 있다. 수컷 공작새는 꼬리가 화려할수록 암컷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호모사피엔스 남성도 여성과 짝짓기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 남성이 보석과 자동차, 집과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것은 장가를 잘 가기 위한, 연인과 짝짓기를 위한 전략인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여성에 감명을 주기 위해 교향곡을 작곡하고 시를 지으며 문명을 발달시켰다. 남성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은 여성이 그 이유이다.

이랬던 남자가 결혼하고 달라지기도 한다. 연애할 때 나쁜 남자가 있듯이 남편과 아버지로서 비열한 남자가 있다. 가정에 헌신적이지 않고 밖으로 나다니는데, 인기가 많다는 것은 가정보다 그들에 마음과 지갑을 열었다는 것이다. 아내의 정곡을 찌르는 질책에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이 가정을 유지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도의 행동화이다. 부양할 가족이 있음에도 파티를 찾아다니고 외도를 하고 반성을 않는 것은 번식본능을 억누를 대뇌피질의 발달이 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충동, 감정 조절능력이 미숙하고 책임과 배려가 결핍된 남성으로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진료경험으로 보면 이런 경우 의심이 많고 폭력적이다.

남자의 본능은 자신의 씨를 가능한 많이 퍼뜨리는 것에 비해 여성의 본능은 내 새끼를 생산하여 잘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유지되고 진화하기 위해 기본이 되는 아이의 출산과 양육이 위협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 이혼 후 양육책임에서 결국 자식을 안는 것은 대체로 여성이다. 홀아버지보다 홀어머니가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여성 혼자 고군분투하고 외조부모가 손주를 양육하는 가족이 늘어난다. 경제적으로 곤란하고 마음을 기대고 싶어 재혼을 하니, 아이에게는 의붓 부모가 생기고 결합가족이 증가한다. 통계 조사에서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경우에 가해자의 대부분이 친부모가 아니라 의붓 부모였다. 결합가족이 늘어날수록 아동폭력의 빈도는 커지는 것이다.

이혼한다는 것은 짝짓기가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동물의 이혼율을 조사해보진 못했지만 우리가 제대로 된 짝을 고르는 능력이 동물보다 못한 것 같다. 사랑의 콩깍지가 씌워지면 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허점이 많기에 사랑도 완벽하지 못하다. 하지만 열정이 식은 뒤에도 신뢰와 성실의 따스한 온도로 사랑을 지킬 수 있다. 비록 이혼할지라도 내 핏줄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으로 그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라도 돌보아야한다. 재혼하여 내 핏줄이 아닌 아들, 딸은 또 다른 기막힌 인연의 끈이다. 의붓 아이를 친자식 이상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사랑의 진화는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생명체보다 인간이 아름답고 훌륭한 존재라는 증거이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추운 겨울에 결손가정의 아이들에게 떠나버린 아버지의 사랑이 돌아오길 바래본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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