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사라지는 울산 향토기업, 미래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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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사라지는 울산 향토기업, 미래가 어둡다
  • 김창식
  • 승인 2021.12.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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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정치·경제부장 겸 부국장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고사성어가 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천하를 통일한 후 신하들에게 “제왕의 사업은 창업이 어려운가, 수성이 어려운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위징이 “천하를 얻고 나면 마음이 교만해져 필요 없는 공사를 일으켜 세금을 거두고 부역을 시키고 한다. 여기서부터 나라가 기울게 된다. 수성이 더 어렵다”(創業易守成難·창업이수성난고) 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울산에서도 1961년 공업도시 출범 이후 가업을 일으킨 창업1세대 향토기업의 2세 가업승계가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창업주에서 2세대로 가업을 이은 향토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변화무쌍한 경제현실의 파고를 넘지 못한채 중도에 부도를 내 쓰러지거나 아예 국내외 기업에 매각해 가업을 접은 탓이다.

옛 성진지오텍을 비롯해 삼창기업, 일성, 대경기계, 대봉아크로텍, 티에스엠텍 등 숱한 향토기업들이 중도에 쓰러졌다. 코엔텍, 덕양 등 몇몇 기업들은 가업 승계보다는 통째로 기업을 외국기업에 매각했다.

특히 향토기업 가운데 가장 긴(60년) 업력을 자랑하던 덕양의 맥쿼리자산운용으로의 매각은 지역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호주의 글로벌 투자은행 맥쿼리는 몇해 전 코엔텍을 매수해 막대한 차익을 남긴데 이어 이번에는 국내 1위 수소 공급·제조 기업 덕양을 8600억원에 거머쥐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의 핵심 선도기업인 덕양이 외국자본으로 넘어간 것이어서 충격은 더욱 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1월17일 수소선도기업으로 덕양 울산 3공장을 방문해 공장 내부를 둘러보고, 임직원을 격려했다. 이날 울산시청에서 2030년 세계시장 1위를 목표로 수소경제로의 대전환 선언하고 정부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한 직후였다. 송철호 울산시장도 수소산업 육성을 포함한 ‘에너지 허브도시 육성전략’을 제시해 수소경제에 힘을 보탰다.

정부와 울산시가 낙점한 수소산업의 핵심 앵커기업이 불과 3년도 채 안된 사이에 외국기업에 경영권을 매각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수소를 미래 먹거리로 키우려는 정부와 울산시의 수소도시 육성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특정 분야에서 앵커기업은 산업을 선도하는 방향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맥쿼리의 덕양 인수 이후 국내 투자자들이 보여준 뒷북 행보다. 국민연금은 최근 맥쿼리의 덕양인수에 1000억원, 한국투자증권은 250억원 재무적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국내 시중은행과 연기금·공제회도 투자 참여 결정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최근 표현대로 ‘냉혹한 (경제)현실’에서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한편의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미 배는 항구를 떠나 외국 국경을 넘었는데 국내 투자자들이 뒤늦게 맥쿼리에 힘을 실어 이익을 챙기겠다는 형국이다. ‘만시지탄’이자 ‘소탐대실’이다. 뒤늦게 작은 이익을 나눠 먹겠다고 아웅다웅하기 전에 국가대표 수소기업이 외국자본에 팔려가도록 방치해 국가의 미래 먹거리산업에 먹구름이 드리운데 대한 반성과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

울산에 장수기업이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는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무쌍한 경제전선에서 지속적인 혁신을 일궈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형제자매 간의 분쟁, 약한 차세대 비즈니스 리더십, 기업가의 유연성 부족 및 변화에 대한 저항, 서로 다른 가족들의 목표 등도 가족기업 생존 가능성을 떨어트린 주요인이 됐다. 가족기업 전문가 존 워드가 제시한 ‘가족기업 성공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중도에 간판을 내린 것이다.

차제에 세대를 이어갈수록 상속 및 증여세 부담이 커져 경영권이 약화되는 현재의 가업승계 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여기에 더해 가업을 일으킨 창업자의 불굴의 도전정신과 위기극복 정신이 계속 퇴색된다면 산업도시 울산에서 대를 잇는 장수기업은 멸절될 것이다. 창의적 도전 정신, 야성으로 뭉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울산이다.

김창식 정치·경제부장 겸 부국장 goodg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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