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을 쉽게 풀 수 있도록 둘둘 말아 놓은 것을 ‘실타래’라고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목도리, 장갑 등을 뜨개질로 만들어 주던 세대들에게는 익숙한 물건이다. 그런데 이 실타래가 종종 엉키는 일이 있다. 조금 엉키면 그나마 풀어내기가 수월하지만 어디부터 엉켰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엉키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동구의 경제는 지금 엉망으로 엉킨 실타래같다. 지난 2015년 무렵부터 세계 조선업 경기 불황이 시작되자 조선업의 비중이 절대적인 동구의 경제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일감이 감소하면 유휴인력이 생겼고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그 결과 현대중공업과 협력업체 노동자 수는 구조조정 직전인 2015년 말보다 3만여명 감소했다. 노동자 감소가 부동산, 상권 등에 미친 악영향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2가지 악재가 함께 온 동구의 경제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 안에 갇혀버렸다.
다행히 올해 조선업 경기가 살아나 선박 수주량이 증가하면서 엉킨 실타래를 풀어낼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12월 기준 현대중공업그룹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수주금액 224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주 금액 200억달러 돌파는 지난 2014년 180억달러 이후 최대 금액이자 2013년 320억달러에 이은 역대 2번째로 높은 금액이다.
문제는 조선업 특성상 선박 수주량이 실제 업황과 재무상황 개선에 반영되기까지는 1~2년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의 노력으로 정부가 동구의 고용위기지역 및 조선업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기간을 내년 연말까지 1년 연장하면서 해결됐다.
하지만 이는 외부적인 문제가 나아진 것 뿐이다. 기성금(공사대금) 축소, 구조조정 등 불황을 이유로 이뤄진 것들이 가져온 내부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현대중공업과 사내협력사, 노동자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엮여 있어 수주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지난 10월말 기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협력사들의 4대 보험 체납액은 300개 사업장 500억원이다. 이 가운데 190개 사업장은 이미 폐업했는데 체납액은 150억원에 달한다. 노동자들의 급여에서는 매달 4대 보험이 공제되고 있음에도 체납되는 상황이 발생,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나빠진 노동자에 대한 처우도 문제다. 조선소는 한 사람 겨우 들어갈 공간을 목숨 걸고 드나들고, 높은 곳에 매달려 쇠를 깎고 용접을 해야 하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분야 일자리보다 임금이 높게 책정돼야 인력 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많은 조선소 근로자가 이직한 건설업이나 플랜트보다 임금은 낮은데 노동시간은 많고 노동강도는 높다. 특히 조선업은 숙련공이 중요한데 경력이 많은 노동자와 신입 노동자의 임금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한 반면 불황으로 협력업체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경력에 따른 임금 상승은 거의 없다시피해서다.
이같은 내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일감이 늘어나도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까지 5000여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고 이 중 구조조정으로 조선소를 떠나갔던 숙련공들이 최대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최근 울산시와 고용노동부·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이 협약을 체결하며 발표한 정책들은 이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오히려 너무 추상적이라는 노동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수주한 선박들을 제시간에 잘 만들어서 발주자에게 인도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과 치열한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세계 선박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지자체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처방이 아닌 현장의 눈높이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지금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사방에서 섞여 들어온 엉킴을 풀기 위해 실 하나하나를 확인할 시간이 없다. 꼬인 실타래를 푸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과감하게 엉킨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홍유준 울산 동구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