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으레 행사 같은 것들이 여럿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해돋이 구경일 것이다. 처음 뜨는 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동쪽 끝을 찾아간다. 추위도 잊고 새벽잠도 깨워 가장 먼저 해를 보기 위해 기다린다. 또한 새해에는 다짐을 그렇게 많이 한다. 대표적으로 흡연자는 금연을, 애주가는 금주를 다짐한다. 중년들은 건강을 위한 운동하기를 다짐하고 청년들은 자격증이나 공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한다. 우리는 그렇게 매년 행사처럼 해왔다.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그 때 한 순간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일출을 만나지만 그다지 반갑지도 않고 뜨는 해가 마냥 귀찮아진다. 그렇게 몇 날이 지나면 새해의 다짐이나, 새해에 바랐던 모든 기대는 잊힌 채 매일 똑같은 반복의 일상을 살아간다. 똑같은 일상, 그리고 아무 의미 없는 생활을 반복하며 허무함과 허탈감으로 매너리즘에 빠져 살아간다.
철학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새해 첫날에 떠오른 해는 어제, 그제 뜬 해와 똑같은 해였고, 쳇바퀴처럼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그저 그런 해이다. 하지만 새해 첫날 사람들은 새 소망을 품는다. 특별한 새해 첫날, 특별한 생일날, 특별히 의미가 있다고 타인(대중)이 지정한 그 날에는 기대하고 소망을 한다. 이 기대는 타인에 의하여 부여된 기대이고 소망이기에 나에게 효험이 별로 없다.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고 부여하여 그저 그런 날을 특별한 날로 만드는 힘이 필요하다.
필자는 2022년 시무식 때 전 직원에게 로또를 선물했다. 아무것도 아닌 종이 한 장을 든 직원들은 설렘으로 기뻐한다. 그러나 이 로또 한 장은 벼락 맞아 죽을 확률인 428만분의 1보다 두 배 어려운 814만 분의 1의 확률로 당첨된다. 당연히 한 벤처기업이 생존할 확률인 100분의 1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대를 한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에 의미를 두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다. 삶에 의미가 없는 것은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도 희망도 기쁨도 없는 것 같다.
오늘 주어진 이 하루는 그저 그런 하루로 치부하기엔 너무 아름답다. 새해 처음 뜨는 해처럼 눈 부시고 희망차다.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이 하루는 그저 그런 하루가 되기도 하고 설렘 가득한 하루가 되기도 한다. 의미를 부여한 그것은 희망이 되고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된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문 위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기대와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라면 천국은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부여한 작은 의미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희망이 되어 아름다운 꽃이 된다.
양희종 (주)아이티엔제이 대표·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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