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전통장인-산업수도 울산, 그 맥을 찾아서]“사라지는 전통벼루, 代 이어 지켜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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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전통장인-산업수도 울산, 그 맥을 찾아서]“사라지는 전통벼루, 代 이어 지켜갈 것”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2.01.06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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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구대 언양록석 벼루를 들고 있는 유길훈 장인

“처음부터 벼루를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백방으로 취직자리를 수소문하다 평소 내 손재주를 눈여겨보던 스승님이 벼루 한 번 만들어 보지 않겠냐고 해서 시작한 일이지. 그때는 전등도 없는 컴컴한 곳에 앉아 돌을 다듬으면서 벼루를 만들었는데 이상하게 차분해지면서 성취감이 생기더라고. 그날 밤 벼루 돌을 끌어안고 잤더니 취직 생각은 달아나고, 벼루를 또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들더라고.”

울산시 무형문화재 벼루장 유길훈 장인은 1969년 스승 김인수 선생과의 첫 만남 이후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벼루를 만드는 외길 인생을 살고 있다. 평양이 고향인 유 장인은 6·25 전쟁으로 어머니·형과 함께 피난길에 올라 충북 증평에 정착했다. 이때만 해도 울산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을 뻔했다.

울산과 유 장인의 인연을 열어 준 것은 다름 아닌 1992년 한중 국교 수립이다. 품질이 좋다고 말로만 전해 들었지 수입이 어려워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중국 ‘단계연’이 필방으로 쏟아진 것이다.

▲ 아들이자 전수 장학생 유은해씨.
▲ 아들이자 전수 장학생 유은해씨.

“당시는 벼루는 물론이고,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시기였는데, 이런 것들을 만드는 장인은 물론이고 공방들이 된서리를 맞은 거지. 저렴한 것부터 부르는 게 가격인 최고급 중국산까지 넘쳐나니까 버텨내질 못했어. 그때 전국에 벼루장만 1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두 손에 꼽히는 정도로 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결국 단계연에 필적한 새로운 벼루돌을 찾기 위해 고문서를 뒤져가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 무렵 딸도 경주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울산을 탐석하다 2001년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에서 언양록석을 만났다.

유 장인은 단계연보다 좋은 벼루 돌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반구대에서 푸른빛이 도는 돌, 물을 흡수를 하지 않아 먹이 잘 갈리는 돌을 마침내 찾아냈다. 공교롭게도 이 일대 암벽에는 벼루길(연로·硯路)을 만들었다는 연로 개수기(硯路 改修記)도 새겨져 있다. 벼루를 만드는 데 최적인 장소다.

▲ 유길훈 장인이 관광기념품으로 만든 벼루.
▲ 유길훈 장인이 관광기념품으로 만든 벼루.

“이곳에 공방을 차려 놓고 벼루를 만들기 시작했죠. 이곳에서 나오는 돌로 만든 벼루가 단계연보다 좋다며 교환해 간 사람도 있을 정도로 품질이 보장된다고 할까요.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는 물론이고, 중소도시 구석구석까지 언양록석으로 만든 벼루가 다 퍼져 있어요. 젊은 시절 울산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도 유튜브로 언양록석 벼루를 보고 지인을 통해 사갈 정도라니까요.”

▲ 유길훈 장인이 만든 반구대암각화 독서대.
▲ 유길훈 장인이 만든 반구대암각화 독서대.

유 장인은 이렇게 말했지만, 내심 벼루와 전통문화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아쉬워했다. 전승자가 사라지는 것도 걱정거리인 눈치다. “제 뒤는 아들 은해가 잇기로 했어요. 처음 전승하겠다고 찾아온 후계자가 달아난 뒤 아들도 답답했는지 지난해 6월 멀쩡히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벼루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어요. 가난의 대물림이 될 것 같아서 전수 장학생 신청하는 것을 두고 아내와 한 달가량 고민했지만, 아들 고집을 꺾을 수 없더라고요.”

유은해씨는 “소상공인들처럼 매출이 많이 발생하는 일은 아니지만, 아버지 명성을 이어가고 싶어서 늦기 전에 도전하기로 했다. 곧 공방을 울주군 언양읍 다개리로 이전해야 하는데 새로운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출퇴근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전상헌기자 honey@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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