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려와 상찬의 덕담 비평인 주례사 비평이 비판받은 지 오래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여전히 비판 정신을 잃은 주례사 비평이 차고 넘친다. 왜 그럴까. 비판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고 비판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판하기를 꺼리는 것은 비판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결국, 주례사 비평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 비판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비판 없는 비평은 비평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은 듣기 좋을지 몰라도 멀리 보면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비자> ‘안위(安危)’ 편에, ‘듣기로 편작이 질병을 치료할 때는 칼로 뼈를 찔렀고, 성인이 위태로운 나라를 구할 때는 충성스러운 말로 군주의 귀를 거슬렀다고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뼈를 찔렀으므로 몸에 통증은 있었지만 오래도록 이로움이 있었고, 귀를 거스르는 말을 했으므로 반감은 있었지만, 나라에는 오래도록 복이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심한 질병을 앓는 사람은 통증을 참아내야 이롭고, 용맹하고 강인한 군주는 귀에 거슬리는 말이 그에게 복이 된다. 통증을 참아냈으므로 편작이 자신의 의술을 다 펼칠 수 있었고, 군주가 귀에 거슬리는 것을 참았기 때문에 오자서는 충언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건강하게 오래 살고 나라가 평안해지는 방법이다. 질병이 있으면서도 고통을 참지 못한다면 편작의 의술이 효과를 잃게 될 것이고, 나라가 위태로운데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피한다면 옳은 길을 잃게 될 것이다.
비평의 문제만은 아니다. 요즘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칭찬에만 익숙한 아이들이 많고 칭송에 익숙한 어른들이 많다. 심지어 그런 말들이 빈말인 줄 알면서도 그런 말 듣기를 좋아하고 자신을 위한 진정한 충고인 줄 알면서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칭찬에 익숙하면 나아가기를 멈추거나 뒷걸음치게 된다. 비판에 익숙하면 나아갈뿐더러 지속하면 나아감에 가속이 붙는다. 나를 위해서는 내 옆에 더하고 뺌 없이 진솔하게 이야기해주는 사람, 나의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우리 모두 자신에 대한 비판을 고마워하며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자.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