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물어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를 위한 경제정책을 생각해보았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다가 새롭게 떠오른 것은 현금 없는 사회였다. 사실 요즘 현금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쓴다. 대부분 신용카드를 쓰지만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하면 모두가 선뜻 동의하지는 않는다.
현금 없는 사회에 반대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세금문제다. 현금이 없어지면 지금까지 현금으로 거래를 하고 세금을 내지 않았던 부분에도 세금을 내야한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정말 현금 없는 사회가 되면 세금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지금까지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던 부분에 세금이 부과되면 세원이 더 늘어난다. 그리고 세원이 늘어나면 세율을 낮출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신용카드 소득공제 정책은 매우 성공적인 정책으로 외국에서 평가되고 있다. 국민들이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정부는 보다 더 많은 거래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정부가 보다 많은 거래를 추적할 수 있게 되면 세원이 늘어나게 된다. 정부가 거래를 추적하지 못하는 거래가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에서는 거래를 추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의 신용카드 소득공제 정책은 성공했다. 이제는 신용카드를 거부하는 소상공인은 그리 많지 않다.
신용카드와 같이 정부가 추적할 수 있는 형태로 많은 거래가 일어나자 국세청의 역할도 변화했다. 과거 국세청의 주된 업무는 소득 탈루를 잡아내는 것이었다. 소득이 있는데 국세청에 보고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현재 국세청의 주된 업무는 비용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보다 많은 거래를 정부가 추적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보다 많은 거래를 비용으로 국세청에 신고하기 시작했다. 비용은 세금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세청은 비용이 아닌 거래를 비용으로 신고하는 것을 잡아내는 것이 주된 업무가 됐다.
현금이 없어지면 정부는 거의 모든 거래를 추적할 수 있다. 정부가 거의 모든 거래를 추적할 수 있게 되면 조세부분에서는 경제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모든 거래에 대해서 정부가 공평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았던 사람들도 세금을 내게 된다. 세금 개혁과 관련된 부분에서 가장 억울한 부분은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그냥 두면서, 왜 세금을 조금 덜 내기 위해서 일부 거래를 숨긴 나를 조사하는가 하는 것이다. 현금이 사라지게 되면 그런 문제점이 사라진다. 조세 정의가 실질적으로 실현되게 되는 것이다.
영국이 이집트를 처음 점령했을 때의 이야기다. 영국은 이집트를 점령하고 토지조사를 실시했다. 세금을 걷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집트의 농민들은 토지조사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토지조사를 통해 영국이 이집트 농민의 땅을 빼앗아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토지조사를 한 뒤 매년 20%의 세금을 부과하면, 5년 뒤에 땅을 빼앗아가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발생한다. 영국은 이집트를 반으로 나누어 1차와 2차로 토지조사를 진행했다. 1차 토지조사가 끝나자, 토지가 측량됐고, 또 등록됐다. 그렇게 되자 거래가 보다 편리해졌고 안전해졌다. 2차 토지조사는 1차에 비해서 더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1차의 시행경험이 있었기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개선된 방법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2차 토지조사가 끝나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1차 토지조사 지역에 있던 농민들이 영국 정부에 2차 토지조사의 방법으로 재조사를 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집트 농민들은 정확한 토지조사의 장점이 세금이라는 단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숨겨진 토지가 사라지고 정확한 토지규모를 정부가 알게 되면 많은 나라에서 세율은 오히려 감소하게 된다. 숨겨진 토지의 규모는 정부의 예상보다 크고, 숨겨진 토지에 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하자 기존에 등록되어 있던 토지에는 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현금이 없어지게 되면 비슷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현금을 완벽하게 없애기 어려운 분야도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흥이나 성형과 같은 분야에서 사람들은 거래가 추적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거래를 위해서는 전자 현금과 같은 방법을 도입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구매와 환매에만 세금을 부과하고 거래의 구체적 내용은 추적하지 못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거 정부의 정보처리 능력은 우리나라의 모든 거래를 추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이제 정부는 우리나라의 모든 거래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금이 없어지게 되면 초기에는 많은 혼란과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정부가 모든 거래를 추적하는 것과 관련된 개인정보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전자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의 적응 문제도 지적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거래에 동일하게 낮은 세금이 부과되는 것의 장점이 더 클 것이다. 모든 거래에 세금이 부과되면 복잡한 세금제도와 공제제도도 단순화할 수 있다. 일하는 것을 숨기며 사회보장혜택을 부정수급할 수도 없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점과 새로운 산업들이 나타날 것이다.
사실 현금 없는 사회를 위한 정책은 꼭 정부가 실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시대의 흐름은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정부가 추진하지 않아도 결국 대부분의 거래는 현금 없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게 되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금은 정부의 영역이다. 공정한 세금 부과는 큰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경제정의라고 판단된다. 공정하고 낮은 세금 부과를 위해 정부가 더 고민하고 노력하고 준비하기를 부탁한다.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