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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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
  • 경상일보
  • 승인 2022.01.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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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인내의 미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을 보태지 않더라도 인내가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통해 진리다. 수년전 구글의 에릭 슈미트회장이 어느 강연에서 ‘혁신과 도전 그리고 사업의 성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단호히 ‘인내’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 ‘열정, 창의성, 모험 정신’이 아니라 ‘인내’라고 말한 것이 퍽 인상적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뜻한 바를 이루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노력한다고 다 뜻대로 성사되는 것도 아니다. 여건이 성숙되지 않으면 각고의 노력도 허망할 수 있다. 의지와 열정으로 시간을 앞당기려 하거나 성숙하지 않은 조건을 순식간에 바꾸려고 하는 것은 부작용을 가져다 준다. 결실에는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요구된다. 조바심을 드러내거나 자만심에 빠지면 일을 그르치고 몸을 해칠 수 있다.

흔히 ‘대망’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한마디로 고난과 인내의 스토리다. 이에야스가 유훈으로 남겼다는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본, 분노는 적이다’라는 글귀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일본 중세 전국시대를 다룬 이 소설은 예측 불가능한 인간사의 흥망성쇠 과정에서 인내로서 승리하는 인간상을 그려내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이거나(오다 노부나가의 결단력) 울도록 하라(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자신감)’가 아니라 ‘울 때까지 기다리라’는 이에야스의 태도는 인내심의 정수를 보여준다.

천하제패를 눈앞에 둔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반란으로 사망한 이후 권력을 장악한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조선을 침략했다가 병사하자 다시 천하를 재통일해 일본 근세인 에도막부를 개창한 이에야스는 임란때 조선 출병을 반대해 출진하지 않았고 조선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일 등으로 인해 우리에게 거부감이 덜한 인물로서 그의 성품과 처세는 인구에 회자돼 왔다.

이에야스는 어릴 적에 다른 가문에서 인질 생활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으며 통일전쟁의 과정에서 노부나가로부터 배신의 의심을 받게 되자 장남을 할복하도록 해 충성심을 보이기도 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으나 참고 견디면서 세력을 키워 히데요시 사후 천하를 평정했다. 초기에 다께다 신겐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그때의 초라했던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두고 보면서 평생 반성의 거울로 삼고 신겐의 병법을 연구하고 분석해 전략 전술의 일인자가 됐다고 한다. 그가 연 에도막부가 260여년간 지속했으니 인내로서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이라 하겠다.

세상사의 크고 작은 영광에 피와 땀과 눈물이 서려 있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피와 땀과 눈물은 인내에서 나온다. 인내하는 인간은 견고한 바위가 센 바람에 전혀 움직이지 않듯이 고난과 고통의 나날을 값진 시련으로 생각하고 묵묵히 나아간다. 참고 견딤은 부지런함과도 통하며 반성과 성찰이 가능하도록 해 준다. 인내심은 통찰력을 키워주고 올바른 판단과 실천 방안을 가져다 준다. 인내는 곧 지혜와 용기의 원천이다.

힘든 시기가 있으면 좋은 시간은 멀지 않았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봄이 가까이에 다가오듯이! 농부가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모내기와 김매기를 하고 비를 기다리는 등의 고생을 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것은 장차 귀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성취와 성공, 쟁취와 승리의 여정에는 인내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어려움과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 성찰하고 올바른 판단과 실천력으로 나아가는 자가 월계관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의 어느 것도 인내의 힘을 이길 수 없고 재능도 인내를 대신할 수 없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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