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가 시작되었다. 금년은 큰 선거들이 걸려 있어 연초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지긋지긋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불안과 살림살이에 대한 걱정도 여전하다. 아무리 어렵지만 새해에는 모두 희망과 기대를 안고 출발한다. 그래서인가 새해에는 한 해의 운세를 점쳐보는 사람들이 많다. 고대 서양에서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신탁이 널리 활용되었다. 다른 나라와 전쟁을 앞두거나, 큰 공사를 시행하려고 할 때, 또는 왕조의 운명이 궁금할 때는 예외 없이 신탁을 구하러 나섰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식이 아니라 통치자들은 대부분 신탁에 의존하여 결정을 내렸다.
역사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Herodotus, BC484~BC425)는 그의 저서 <역사>(Historiae)에서,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 등에서 무수히 시도되었던 신탁의 내용을 살펴보고 두 가지의 교훈을 도출하였다. 하나는 ‘지나친 번영은 위험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상이 범한 죄는 자손이 갚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수천년 전에 신들이 당시의 인간들에게 내린 계시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함의(含意)를 던지고 있다.
헤로도토스는 고대에 융성했던 왕조들의 몰락은 대부분이 자만과 만용으로 스스로 무너진 것으로 보았다. 우리는 소위 잘 나가던 인사가 갑자기 주저앉는 경우를 본다.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기업이 쇠퇴하는 경우도 흔히 나타난다. 한 때는 세계를 호령했던 국가가 중소국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선거에서 지지율이 상당 정도 앞서던 후보가 이에 취해 변화를 주저하면서 지지율이 고꾸라지기도 한다.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등장한 신예들이 초심을 잃고 자만에 빠져 오래가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는 경우도 있다. 소니는 한 때 세계시장을 점령했지만 혁신의 부재로 삼성에게 추월당하고 말았다.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많은 경우 두드러진 성공이 가져오는 정신적 해이와 안일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일시적인 성취는 겸손과 절제의 마비를 유발한다. 지나치게 자심감이 충만하여 주위의 조언도 무시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집한다. ‘반성과 점검’ 없이 ‘자기 확신’에 빠져 비이성적이며 과거지향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렇게 되면 결국 개인이나 기업, 국가 모두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적은 내부에 있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인 셈이다. 그래서 헤로도토스는 지나친 번영은 대부분 몰락을 가져온다고 경고한 것이다.
두 번째 교훈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서 현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현세대가 저지른 일은 후세대가 감당하게 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현세대가 잘못된 정책을 시행하면 그 부담과 피해는 다음 세대에게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제도나 정책의 영향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지속된다. 건강보험제도를 변경하여 적용대상을 확대시키면 당대에는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지만 그에 필요한 비용은 후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선거를 앞두고 여러 명목으로 현금을 풀면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이로 인한 미래의 고통은 오롯이 후세대의 몫이다.
아무리 선거과정이라고 하지만 50조, 100조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내린다. 금년에 국가채무가 1000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젊은이는 줄고 노인들은 증가하는 역삼각형 인구구조에서 연금, 의료, 사회복지비 등을 감당해야 하는 후세대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안기는 것은 ‘조상의 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헤로도토스는 번영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다. 성공과 번영을 위해 노력하되 이를 성취한 후에도 안주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절제하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행위든지 미래, 즉 후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숙고하여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한 해를 시작하며 새 출발을 모색하는 시기이다. 헤로도토스가 제시한 신탁의 교훈이 새해의 다짐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