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30)]미국의 크리스마스 전쟁: 메리 크리스마스-해피 홀리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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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만의 사회와 문화(30)]미국의 크리스마스 전쟁: 메리 크리스마스-해피 홀리데이스
  • 경상일보
  • 승인 2022.01.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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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

한 달전 크리스마스때 미국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한 노숙인이 폭스뉴스 본사 앞에 설치된 대형트리에 방화를 했고, 폭스뉴스사는 이를 불순분자들의 조직적 음모가 나타났다고 소동을 피웠다. 노숙인의 방화동기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 후 켄터키 출신 하원의원이 가족사진을 찍으면서 젊은 자식들까지 모두 총을 한 자루씩(기관총과 반자동소총)을 들고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 탄약도 부탁해’라고 트윗인사를 했다. 이는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트럼프가 대통령 재선에 실패한 후 미국내 ‘크리스마스 전쟁’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그 여파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됐다. 여기에서 크리스마스 전쟁(War on Christmas)이란 성탄절 인사말을 신성하게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고 해야하는데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라는 말로 성탄절을 세속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배후에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조직적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음모론이며 트럼프가 불지핀 문화전쟁이다.

트럼프는 재임동안 이 전쟁의 사령관을 자임해왔다. 사실 이 이념논쟁은 20~30년전부터 있어왔는데 트럼프가 이를 선거전략으로 활용하면서 격화했다. 그는 이 득표전략으로 꽤 이득을 얻었다. 복음주의자들의 표를 독식했으며, 가톨릭을 믿는 히스패닉을 반분하여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이 인사말 전쟁의 이상한 점은 분노하여 소란을 피우는 측은 있는데 상대방은 불분명한 전쟁이다. 이 논쟁의 큰 문제는 자신들의 숭고한(?) 종교적 ‘인사말’을 수호하기 위하여 한 하원의원처럼 당장 총들고 상대방을 쏘아 죽일 폭력적 기세이다. 이는 다민족 국가를 지향하는 미국 헌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미성숙 인격체의 노출일 뿐이다. 재임기간동안 트럼프가 보여준 충동적, 차별적 성격과 언행으로 인한 백성과 사회의 폐해를 치유해야 할 상황에서 일부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덩달아서 여기에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성탄절 관련 이슈를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생일이 맞는가? 12월25일은 엄밀히 말해서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다. 논란 끝에 로마 태양신의 날 또는 동지절(게르만 Yule율 축제)의 세속적 축제에 기독교적 색채를 입힌 날이다. 종교를 넘어서 인류에게는 이날 이후로 햇빛이 어둠의 시간보다 더 길어지므로 뜻깊은 날이다. 성경과 초대교회에는 성탄절이 아예 없었고, 미국 개신교의 선각자 청교도들은 성탄절이 너무 세속적이고 예수의 생일도 아니므로 이를 기념하지 못하도록 했고, 이 법률을 어기면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둘째, ‘메리’라는 단어는 상대를 쏘아죽이고 싶을 만큼 거룩한 단어인가? 지금도 영국여왕은 성탄절에 ‘Happy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한다. 오히려 ‘메리’라는 단어는 세속적으로 즐긴다는 느낌이 있으므로 이를 일부러 피한다. 영미권에서 ‘해피’와 ‘메리’는 성탄절에 모두 다 사용해온 말이다.

셋째, ‘해피 홀리데이스’는 왜 생겨났는가? ‘해피 홀리데이스’를 쓰자고 하는 사람들은 미국은 이제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고 연말연시에 다른 민족 축일도 겹치므로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포괄하는 표현을 쓰자고 한다. 기독교인에게는 ‘메리 크리스마스’로, 비기독교인에게는 ‘해피 홀리데이스’라고 인사하자는 뜻이다.

크리스마스는 이미 미국과 전세계에서 널리 축하되고 있다. 기득권과 형식에 집착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공공장소에서 크리스마스트리나 캐럴금지 등 법원판결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소중한 축일에 총을 들고 나서라고 트윗함으로써 축일분위기를 망치는 무모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느 사회에서나 무모한 열광과 충성심은 재앙을 부른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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