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65)]수피들의 고향, 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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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65)]수피들의 고향, 콘야
  • 경상일보
  • 승인 2022.01.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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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터키 내륙으로 향하는 길은 광활한 초원의 길이다. 풍광이 지루할 듯도 하련만 결코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거대한 공간감 때문일까.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실크로드 장면이 데자뷔가 되어 되살아난다. 지평선은 실크로드의 천산산맥처럼 멀리 보이는 설산까지 전개되어 장엄한 파노라마의 경관을 펼쳐준다. 초록빛으로 덮인 초원은 생명과 생산의 땅이다. 일부러 심지 않아도 싱싱한 풀이 자라나 비옥한 목축의 땅이 된다.

풍광만이 유사한 것은 아니다. 초원지대는 기원전 2세기 이래 길이 되었다. 유목 민족들은 가축을 따라 초원을 이동했고, 중동과 중국인들은 이 길을 따라 장사하러 떠났다. 그들에게 국경이란 무의미한 것. 바람처럼 잠시 지나다 쉬어가는 곳이다. 풀밭을 찾는 가축을 따라 쉬엄쉬엄 가다보면 거리가 문제되지는 않았을 터. 몽골의 초원지대에 살던 유목민족들이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을 넘어 터키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초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과 중앙아시아에 살던 투르크족들이 아나톨리아 반도에 등장한 것은 10세기 무렵이다.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에서 발흥한 투르크 족은 중동 쪽으로 진출하면서 이슬람사회를 정복했다. 11세기에는 당시 터키 땅을 지배하던 동로마제국의 군대마저 격파하면서 중앙아시아에서 중동과 터키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들을 이끌었던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국호를 ‘셀주크 투르크’라고 했는데, 그 부족 중 한 분파가 오늘날의 터키 지역에 나라를 세우고 수도를 콘야로 옮겼다. 바야흐로 투르크인들이 지배하는 터키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광활한 초원을 누비던 유목족의 기질과 능력은 터키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더 이상 유목민이 아니었다. 아나톨리아는 유럽과 아시아, 기독교와 이슬람이 만나는 곳이다. 그들은 두 세계를 연결하는 무역을 중계하면서 상업적 부를 쌓아갔다. 도시는 국제무역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구축했다. 대상을 위한 숙소를 지었고, 기도소와 목욕탕, 말과 낙타를 위한 축사도 만들었다. 수표를 발행하거나 동업조합이 형성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 콘야에서 만난 메블라나의 영묘. 육중한 돔 지붕 사이에 우뚝 솟은 연필모양의 이 탑은 실상 탑이 아니라 지붕이다. 바로 그 지붕 밑에 메블라나의 무덤이 자리한다.
▲ 콘야에서 만난 메블라나의 영묘. 육중한 돔 지붕 사이에 우뚝 솟은 연필모양의 이 탑은 실상 탑이 아니라 지붕이다. 바로 그 지붕 밑에 메블라나의 무덤이 자리한다.

그러나 콘야에서 셀주크 투르크시대의 화려했던 도시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산하고 담백한 이슬람 소도시의 모습이다. 도심 외곽에 남아있는 대상숙소 ‘술탄한’(Sultanhani;13세기 건립)만이 옛 영화를 증거해 준다. 술탄한은 완연한 성곽의 모습이다. 높고 육중한 성벽, 간간이 돌출한 치성, 우장하고 폐쇄적인 성문 등 왕성이나 왕궁을 둘러싸는 성곽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당시에는 오성급 호텔이었음에 분명하다.

콘야에서 수피교의 창시자 메블라나와의 첫 만남은 예기치 않았던 충격이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내가 아는 수피교는 그저 흰 치마에 원통형 고깔모자를 쓰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마’춤 정도가 전부였다. 보는 사람이 어지러울 정도로 맴돌기를 반복하고도 멀쩡한 사람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었다. 마치 무당이 굿의 절정에서 시퍼런 작두를 타는 것처럼 엑스타시를 추구하는 사교집단 정도로 추측했었다.

수피즘, 터키 학자 이희철은 그것이 터키의 이슬람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라고 소개했다. 수피는 신과 완전한 합일을 이루기 위해 춤과 노래로 의식을 진행했던 이슬람 종파 중 하나였다. 아랍어 코란을 읽기 어려웠던 투르크족에게 경전이 아닌 춤과 노래로 신과 결합할 수 있다는 수피의 교리. 경전을 공부해야하는 정통 수니파의 가르침보다 훨씬 매력적이었음에 분명하다. 그저 춤만 추면 신과 만날 수 있다니 그보다 더 쉽고 명쾌한 신앙이 있을까.

메블라나(Mevlana Celaleddin-i Rumi, 1207~1273)는 세마라는 춤을 만든 메블라나 종파의 창시자이다. 그러나 이들을 신비주의에 빠진 춤꾼으로 보는 것은 큰 실례다. 메블라나가 남긴 단편적 시만 보아도 이들의 신앙이 얼마나 넓고, 깊고, 자유로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다 형제이며 신으로부터 받은 인간의 영혼은 영원하므로, 모든 사람들은 사랑 가운데 미덕과 선행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종파의 가르침이다.

콘야에서 만난 메블라나의 영묘는 마치 알함브라 궁전처럼 이 아름다운 신앙의 전설을 회상시킨다. 건축의 형식 또한 사라진 셀주크 시대를 기억한다. 원통형 탑 위에 원추형 지붕을 얹은 탑, 그것은 셀주크 시대를 대표하는 형식이다. 육중한 돔 지붕 사이에 우뚝 솟은 연필모양의 이 탑은 실상 탑이 아니라 지붕이다. 바로 그 지붕 밑에 메블라나의 무덤이 자리하기에 가장 높은 지붕으로 그 위치를 표현한 것이다.

고깔지붕의 탑을 제외한다면 전체적인 건축형식은 이슬람사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역을 크게 나누면 회랑으로 둘러싸인 전정과 본관으로 구성된다. 본관 안에는 메블라나의 무덤을 비롯한 많은 신도들의 무덤이 관의 형태로 놓여 있다. 시신을 모신 관이 아니라 관 형태의 봉분이다. 내부공간도 모스크와 다르지 않다. 크고 작은 돔 천장이 공간의 변화를 연출한다. 벽체는 장식이 거의 없어 담백하고 순결하지만, 돔 천장은 세밀하게 수놓은 양탄자처럼 현란한 모자이크로 마감했다. 묘지라는 암울한 무거움도 없지만 결코 경박스럽지도 않다. 메블라나의 고요한 위로가 천장을 울리는 듯하다.

오라, 오라,
당신이 방랑자이든, 우상숭배자이든, 또는 불을 숭배하는 자이든
수천 번 서약을 어겼더라도
언제든 다시 오라.
우리는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리니.
(잘랄루딘 루미의 시 중에서)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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