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30)]단기지계(斷機之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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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反求諸己(30)]단기지계(斷機之戒)
  • 경상일보
  • 승인 2022.01.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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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문학박사

연암 박지원이 지은 고전소설 <허생전>을 보면, 주인공 허생이 십 년을 예정하고 책 읽기를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상에 십 년을 예정하고 책 읽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다면 지난 일 년 동안 책 한 권을 완독한 사람은 있을까.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책을 읽었다는 사람은 많지만,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유하면서 정독한 사람은 많지 않다. 반쯤 읽었다, 발췌독했다, 책 읽기 대신 그 책과 관련한 인터넷 기사를 찾아봤다는 등의 답을 하는 사람이 많다.

거리를 나서면 새롭게 문을 연 가게들이 많다. 점점 오래된 가게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대를 이어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몇십 년씩 가게를 하는 곳은 찾기 힘들다. 공부든 취미 생활이든 중도에 그만두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 못지않게 많이 듣는 말 중에 ‘한 일 년 바싹 일해서 돈 벌고는 그만두어야지’라는 것도 있다. 중도에 그만두는 것, 빨리 끝내려는 것, 쉽게 싫증 내고 자주 바꾸려는 것, 포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이 현명한 태도로 이해되기도 한다. 물론 중도에 그만두거나 자주 바꾸는 것이 좋을 때도 있고, 빠른 포기가 현명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끝까지 가려고 최선을 다했는가? 오래된 것의 가치를 한 번은 생각해봤는가? 나의 끈기 없음이나 의지 부족 때문은 아닌가?

단기지계(斷機之戒)라는 말이 있다. <후한서>의 ‘열녀전(列女傳)’에 나오는 말로 학문이나 실무를 중도에서 그만두면 아무 쓸모 없이 된다고 경계함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가 있다.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맹자가 중도에 그만두고 집을 찾았더니 맹자의 어머니가 반가워하기는커녕 베틀에 앉아 짜고 있던 베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는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그만둠은 짜던 베의 중간을 잘라버린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읽다가 그만둔 책 세 권보다는 완독한 책 한 권의 가치가 더 크다. 새해에는 거창한 꿈 대신 일상의 한 가지 일이라도 끝까지 하겠다거나 아니면 한 권의 책이라도 완독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실천해보자.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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