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만기(滿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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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만기(滿期)
  • 경상일보
  • 승인 2022.01.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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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수현 울산 중남초등학교 교사

2월은 만기(滿期)의 달이다. 4년, 미리 정한 최대의 기한이 다 하는 달이다. 친절하게 자산 관리를 알리는 문자가 어김없이 도착한다. 4년마다 학교를 이동하면 근처 은행을 이용해서인지 학교 근무와 소액적금의 만기가 겹친다. 정해진 기한이 돌아오면 미리 알려주는 금융기관의 문자 서비스는 반갑지만, 4년간 근무한 학교를 떠나기 위해 정리하는 만기(滿期) 교사의 마음은 헤어짐의 아쉬움이 크다.

종업식, 4년간 담임을 한 아이들에게 방송으로 인사를 나눈다. 시간의 바퀴는 왜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것일까? 차곡차곡 쌓인 아이들과의 정 때문일까, 희로애락을 함께 한 4년이라는 시간 때문일까? 인사 몇 마디를 시작하자마자, 담임을 맡았던 5학년 방송부 아이의 빨갛게 상기된 눈과 마주친다. 순간 목이 메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인사를 마치고 교실에 가니 교실도 전염되어 눈물로 가득 차 있다.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하니, 더 큰 소리로 “선생님~” 하고 울어버린다. 눈물 만들기 대회라도 해야 할 순간이다.

선생님의 마음 곳간에 크고 작은 추억과 마음이 오고 간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학교 뜰 크게 열린 매실을 따서 만든 매실청으로 여름철 시원한 음료를 만들던 일, 말벌을 잡겠다고 온 교실을 뛰어다니다 말벌 가족의 역습에 혼쭐이 났던 일, 코로나19로 개학이 늦어져 5월이 다 되어 첫 만남을 하게 된 아이들, 한글 미해득이 유난히 많아 선생님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공부로 보낸 아이들, 교직 생활 중 중남의 4년은 아이들과 더 많이 함께하려고 노력한 시간이다.

3학년이 되어서도 2학년 교실을 매일같이 찾아와 선생님 아들로 소문난 아이가 있다. 궁금한 것도 많고 개성이 강한 아이라 누구보다 잘 자랐으면 하고 진심으로 소망하는 아이인 상현이가 종업식을 마치고 교실로 찾아왔다. 손에서 손으로 무언가 건넨다. 보라색 꽃과 진주로 장식된 카드와 메모 받침대이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말에 선생님의 마음은 ‘쿵’하고 뛴다. 정답게 마음을 표현하며 잘 자라준 아이가 고맙다.

‘임수현 선생님, 저를 사랑해주시고, 저를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오늘이 마지막이라 더 많이 뵙고 싶은데 마지막이라 아까워요. 사랑해요.’ 처음으로 건넨 카드에 쓰인 ‘시간이 아깝다는 말’, 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심전심인가? 마음은 숨기려 해도 알아챔이 쉬운가 보다.

만기(滿期)의 선배 교사에게 후배가 조용히 글귀 하나를 보내왔다. 억지로 하지 않으니 그들이 저절로 바뀌고, 고요함을 좋아하니 그들이 저절로 올바르게 되고, 쓸데없는 일을 꾸미지 않으니 그들이 저절로 넉넉해지고, 욕심을 내지 않으니 그들이 저절로 소박해진다.

무위(無爲)와 불언(不言)의 가르침이 와 닿는다. 가르침의 자세와 방향을 상기시키는 후배의 조용한 조언이 더 깊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임수현 울산 중남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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