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봄에 경상일보 로고스칼리지에서 ‘홍대용의 연행록과 박지원의 열하일기’ 강의를 들었다. <을병연행록>을 번역하신 정훈식 선생님이 강의해주셨다. 2019년 봄에 울산도서관 인문학아카데미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 강의를 듣기도 했다. 그때는 문영 작가님이 강의하셨는데, 문영 작가님은 열하까지 가는 길을 여러 번 다녀오셨고, 강의 때 사진을 많이 보여주셨다. 2007~2008년에 경상일보에 ‘발로 읽는 열하일기’를 42회 실었고, 2019년에 <발로 읽는 열하일기> 책이 나왔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열하일기 책은 두꺼워서 다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일부를 뽑아서 옮긴 글들을 마주치기는 쉽다. 허생전, 호질(虎叱) 이야기는 교과서에 나오기도 한다. 홍대용이 북학파로 교과서에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박제가의 <북학의>는 알지만, 홍대용이란 이름은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강의 들으면서 홍대용에 대해서 알게 됐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사람이다. 홍대용은 1765~1766년에 북경에 갔다와서 기록을 남겼다. 박지원은 1780년에 북경과 열하(熱河)에 갔다왔다. 홍대용(1731~1783)이 박지원(1737~1805) 보다 나이가 많고, 북경에 먼저 갔다왔다. 그 둘은 절친이다.
홍대용, 박지원은 둘 다 좋은 집안에 태어났다. 공부를 많이 했고, 여기저기 관심이 많았다. 그렇지만 벼슬을 하진 않았다. 사신(使臣)이 북경에 갈 때 데리고 가는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따라 갔다. 사신은 신분이 높고 체면이 있어서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했지만, 자제군관은 사신 보다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들은 그런 지위를 활용해서 두루두루 보러다니고, 현지 사람들과 얘기하고, 글로 세상 얘기, 역사 얘기를 하루 종일 하고, 다음 날에 또 하고, 또 하고 했다. 그 보고 들은 것, 겪은 일, 대화 나눈 내용을 글로 남겼다. 하도 자세하게 일일이 글로 남겨놔서, 비디오로 찍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 같다.
홍대용, 박지원이 공부를 어찌나 많이 했는지, 중국 선비들과 얘기하는데, 얘기가 통하지 않는 게 없다. 중국 역사, 요순시대부터 당시대까지, 학문, 조선의 역사, 지리, 모두 꿰뚫고 있다. 그런데다가 그릇 굽는 방법, 벽돌, 수레, 말, 집의 온돌 제도, 방적기, 별별 것들에 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얘기하고, 또 그걸 그대로 글로 남겼다. 우주 얘기부터 말똥 얘기까지. 그걸 다 한자로 썼다. 그걸 다 썼다는 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 지금 내가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홍대용은 그걸 또 한글로도 썼다. 옛날 글이라서 번역본이 나왔는데, 2권 합쳐서 990페이지 쯤 된다. 1760년대에 한글로 쓴 여행기록인데, 읽기 쉽고 생생하다. 한국어로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번역한 분도 사진을 같이 붙여서 주석을 달아서 어찌나 읽기 쉽게 해주셨는지, 또한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 덕분에 글을 보면서 비디오 보는 느낌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박원빈 강남동강병원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