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중대산업재해처벌법이 27일 시행됐다. 그리고 법 시행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울산을 대표하는 거대 사업장에서는 또 다시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중대산업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은 작업현장의 안전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왔으나 그럼에도 법 시행 직전임에도 사망사고를 막지 못했다. 그 만큼 산업현장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영책임자와 노동자 모두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함을 새삼 절감하게 한다.
누구도 사고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과실과 부주의만으로도 큰 사고가 너무나 쉽게 발생하는 곳이 산업현장이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지만 이 것만으로는 경영자책임자들의 보다 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요구가 많았다. 하지만, 법안을 살펴보면 중대산업재해처벌법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아직 우리가 갖추고 보완해야 할 점들이 너무나 많다.
경영책임자와 노동자들이 함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현장의 위험요소를 상시적으로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산업현장별 맞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방법에 대한 상세한 기준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명확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지침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을 가중시킨다.
중대산업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에 관한 전담조직을 두도록 강제한다. 또, 전담조직은 산업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야하고 이는 경영책임자의 책임이 된다. 입법취지는 좋으나, 문제는 사각지대가 많다는 점이다. 전담조직을 둘 대상기업에 대해 500인 이상 사업자 또는 200위 내 건설사업자로 적용기준을 한정하였는데, 막상 중대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곳은 소규모 사업장이다. 중대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재해 후 배상조차 받기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은 상대적으로 법의 보호에서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법령 적용법 적용 자체가 되지 않는다. 지금도 대기업 근로자와 영세기업 근로자 사이 차이가 큰 데, 산업안전에 대해서도 이렇게 차별을 둔 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5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대해 경영책임자에게 부담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 취지라면, 집단적 관리방법을 강구하거나 예방과 피해자 배상에 대한 추가적 보완을 연구했어야 했다. 대부분의 안전사고는 영세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고, 영세사업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의 피해자는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에 법이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중대산업재해처벌법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함께 경영책임자에게 광범위하고 강력한 형사처벌을 예고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영책임자들 사이에는 막연한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경영책임자에게 주의를 강화하는 의미일 것이나, 경영책임자 특히 대기업의 경영책임자가 현장의 모든 부분을 모두 알고 살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기준이 막연한 상태에서 경영책임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안전사고에도 경영책임자는 실질적으로 책임을 면하기 어렵고 그 책임은 형사적으로 민사적으로 매우 무거운 것이다. 자칫 사업하는 사람은 전과자라는 것이 당연한 공식이 되어버릴 만하다.
이렇게 기준과 개념이 불명확하고 적용대상이 한정적인데, 처벌만 강력하다면 자칫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당장, 애매한 적용기준으로 경영책임자들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방어적 행태를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경영책임자들은 법 적용 기준이 강화되는 500인 이상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회피하려 할 것이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중소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역시 어느 수준까지 어떤 요구를 반영시켜야 할지 혼란이 생길 수 밖에 없고, 무엇보다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는 나아진 것이 없다.
결국, 중대산업재해처벌법의 입법목적인 중대산업재해 ‘예방’보다는 사고 발생 후 화풀이하듯 처벌에만 메달리는 형국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산업수도 울산은 동시에 노동의 메카다. 중대산업재해처벌법 시행을 즈음해 법의 입법취지와 목적에 맞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경영책임자와 노동자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김상욱 법무법인 더정성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