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59)]경주 마동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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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100탑(59)]경주 마동 삼층석탑
  • 경상일보
  • 승인 2022.01.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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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혜숙 수필가

키 큰 석탑 위로 구름이 잔뜩 몰려온다. 흐린 날씨에도 삼층석탑이 하얗게 빛난다. 군데군데 터를 잡았던 이끼가 간데없다. 비바람을 견뎌낸 거뭇거뭇한 세월의 더께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수십 년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곱게 단장을 했는데 공연히 서운하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려다 얼른 경배를 올린다.

보물 제912호 마동 삼층석탑은 8세기 후반에 건립되었다. 가까운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아무런 장식이 없이 소박하고 장중하다. 각 부분의 비례도 아름답다. 지붕의 네 귀퉁이에 풍경을 달았던 여러 개의 구멍이 오늘따라 정겹다. 깨끗해진 탑의 몸체가 아니라 자꾸 그곳에 눈길이 간다. 신라 호국의 진산인 토함산을 조망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석탑이 있는 곳은 장수사의 옛터라고 전해져 온다. 김대성은 젊은 시절 사냥을 좋아하여 토함산에 올라 곰 한 마리를 잡은 뒤, 산 아래 마을에서 유숙을 했다. 꿈에 죽은 곰이 귀신으로 화하여 나타나 자신을 위해 절을 지어 달라고 했다. 대성은 그때부터 사냥을 금하고 곰을 잡았던 자리에 장수사를 지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는 이 땅 곳곳을 누비며 보고 들은 것을 자유분방하게 엮은 이야기다. 신라의 재상이었던 김대성은 사재를 들여 불국사를 창건 했지만, 생전에 다 짓지 못하고 그가 죽은 뒤 왕실에서 완성하였다. 그렇다면 청년시절과 관련된 장수사는 불국사보다 먼저 토함산 자락에 지어진 것은 아닐까. 수수께끼 속 인물인 대성의 호방한 기상을 통일신라의 석탑에서 엿본다.

토함산 등산을 마치고 힘찬 걸음으로 내려오던 젊은 남자가 석탑 앞에 멈춘다. 열심히 사진기를 꾹꾹 눌러댄다. 곰 한 마리는 거뜬히 눕힐 수 있는 기운찬 어깨가 들썩인다. 탑골 마을 골목길을 내려오다 자꾸 뒤를 돌아본다. 신라의 호걸 대성이 삼층석탑을 떠메고 내 뒤를 따라오는 듯하다. 삼국유사는 그렇게 상상력을 무한 확장시키는 힘이 있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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