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산업수도 울산 60년, 유년의 추억 ‘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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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산업수도 울산 60년, 유년의 추억 ‘사택’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2.02.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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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영진 문화부장

60년 전 오늘(2월3일)은 산업수도 울산의 출발점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열린 날이다. 이를 조명하는 행사들 가운데 울산박물관은 ‘울산산업 60년, 대한민국 이끌다’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는 어느 공장에서 무엇을 생산하였는가 알려주기보다, 매캐한 연기와 기계음 속에서 한평생을 산업의 일꾼으로 헌신한 근로자에 초점을 맞춘다. 산업수도 울산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 세월을 감내하며 살아 온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는 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보여준다.

필자에겐 전시 내용 중 ‘사택’(社宅)이 특별하다. 유년기 이후 30대가 되기까지, 삶의 절반 이상을 ‘사택’이라는 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어린 날의 추억을 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마주하는 기분은 묘하다. 평범한 일상의 기억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대톱니바퀴 속에서 울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살리는 필수부품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시 남구 무거동의 한 사택단지였다. 60호가 조금 넘게 살았다. 예전엔 한양화학 사택으로 불렸고, 90년대 이후엔 한화종합화학, 최근에는 한화케미칼 사택으로 불리는 곳이다. 부친의 퇴사와 함께 20여년 전 그 곳을 떠났지만 유년의 기억은 아직 선명하다. 울산석유공단이 초호황기를 달리던 1980년대엔 사택 역시 지금의 분위기와 달랐다.

출퇴근버스는 매일 오전 7시30분 사택을 출발해 오후 6시 되돌아왔다. 사택과 시내를 연결하는 셔틀버스도 운행했다. 버스는 매시 정각 사택을 출발했고, 매시 30분 사라진 옛 울산병영역을 출발해 다시 사택으로 돌아왔다. 외국인 기술자를 위해 지어졌던 복지공간은 기술자가 떠나도 그대로 유지됐다. 누구나 골프장, 테니스장, 축구장, 수영장, 당구장, 헬스장을 무상으로 이용했다. 일년에 한두번씩 가족단위 유람과 명랑운동회도 열렸다.

철조망에 둘러싸인 사택단지는 주변마을과 철저하게 분리돼 그들만의 공동체문화를 형성했다. 부인회는 그 안에서 별도의 유치원을 운영했고, 도서관과 독서실도 만들었다. 사택에서 놀던 아이가 다치면, 시내의 병원 대신 회사 응급실을 찾아가 처치를 받았다. ‘화목한 가정이 안전한 직장을 만든다’는 취지에서 직원 자녀들에게 한양화학 생산라인을 공개하기도 했다. 집앞 마당을 손수 꾸미도록 해, 아름다운 정원을 심사하여 포상하는 행사도 열렸다. 산업투어나 마을정원가꾸기 사업이 수십년 전 그 안에서 먼저 시행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긍정적이진 않았다. 사택단지는 일반사원에서 공장장에 이르는 조직서열을 온가족이 감내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 안에 살았던 20여년 간 508호, 306호, 609호로 3번 이사를 했다. 마지막 한번 더 이사를 할 수도 있다고 들었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에는 어려서 몰랐지만, 아마도 아버지의 진급(직급)에 따라 평수나 내부구조가 더 나은 곳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럿이, 오랫동안 함께 사는 공동체이다보니 그야말로 남의 집 숟가락 갯수까지 알 지경이었다. 이웃간 마찰이 빚어져도 가장의 직장조직과 연계되니 입단속에 속앓이도 많았을 것이다. 자녀의 성적이나 재산규모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집도 적지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사택은 울산만의 독특한 주거문화다. 1964년 한국석유공업 사택에서 시작됐다는 울산의 사택문화가 얼마나 많이 지어졌다 사라졌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2004년 당시 현존하는 사택만을 대상으로 총 45곳을 조사분석한 논문이 있다. 그 중 23곳은 10년 뒤 2011년까지 존재했다. 10년이 더 흐른 현재는 17곳만 남았다. 울산사택문화의 지속연구가 필요하다.

특별전에는 이밖에 다른 이야기도 많다. 전시장의 모든 사연은 우리 모두의 기억이자 추억담이다. 울산시민 대개는 지역 기업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다. 가깝게는 부모형제, 멀게는 동창과 이웃이 그랬다. 혈연·지연관계가 아닐지라도 울산땅에 발딛고 산 사람이라면 사돈에 팔촌 중 어느 한 사람은 반드시 산업화 60년의 어느 한 지점, 그 사람의 삶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번 특별전이 우리 모두에게 남다른 감회를 안겨주는 이유일 것이다.

홍영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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