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백문이 불여일견’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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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백문이 불여일견’은 옳았다
  • 경상일보
  • 승인 2022.02.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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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정 울산 방기초등학교 교사

지난해 2월, 임용합격 소식을 받은 기쁨도 잠시, 여러 고민에 부딪히게 되었다. 출퇴근부터 업무 등 현실적 문제뿐 아니라 교사로서 살아남기 위한 걱정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중 최고 난제는 단연 ‘수업’이었다. 교육대학교에서 설계해 본 수업과 교사로서 실제 수업은 차이가 컸다. 1분 1초의 시간까지도 고민하던 교생 실습수업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그제야 알았다. 적응하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텼으나 아이들과의 정이 깊어질수록 나의 부족함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그 때문이었다. 수업에 대한 열망이 높아진 것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는데, 마침 ‘일견’의 기회가 10월에 찾아왔다. 강남교육지원청의 ‘일상 수업으로 초대’가 그것이었다. 기존의 정돈되고 약속된 수업이 아닌 일상적인 수업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나의 상황에 딱 맞다니! 공문을 보자마자 바로 신청해 두 번의 수업을 볼 수 있었다.

수업을 참관하기 전, 나름대로 상상한 장면이 있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다양한 교수 기법이 적용되는 수업, 베테랑 선생님들의 노하우를 직접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설레었다. 막상 수업을 참관하고 나서는 ‘이런 기술을 적용해보고 싶다’보다는 ‘이런 수업을 할 수 있다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업의 주제부터 범상치 않았다. 구영초 황은아 수석선생님의 ‘타블로’를 활용한 역사 수업과 웅촌초 강명희 선생님의 ‘회복적 써클’을 활용한 읽기 수업. 임용고시 공부할 때나 듣던 용어들이었다.

첫 참관수업은 한 모둠씩 조선 후기 서민문화를 ‘타블로(움직이던 대상이 정지된 행동으로 재현해 보여주는 것)’로 표현하면 다른 학생들이 그 내용을 알아맞히는 활동이었다. 이 수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단연 교사의 ‘발문(질문)’이었다. 타블로가 학생들의 흥미를 일깨웠으나 이를 몰입으로 이끈 것은 교사의 발문이었다. 조선 후기 서민 놀이를 타블로로 재현한 후 선생님은 ‘왜 이것이 유행하게 되었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한 학생이 ‘서민들이 부유해지면서 놀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교과서는 필요 없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낸 것이다. 특정 기법을 수업에 적용할 때 범하는 실수가 있다. 내용보다 활동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게임 활용 수업에서 학습 내용보다는 승패만 기억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수업은 그에 대한 해답을 던져주었다. 핵심적인 질문으로 주제를 환기하는 것. 이를 통해 수업의 키를 다잡는 것. 기본이지만 평소에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첫 번째 참관이 자기반성의 시간이었다면 두 번째는 틀을 깨는 충격이었다. 수업에 많은 활동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질문과 답, 수용과 몰입뿐이었다. 주제는 책을 읽고 등장인물의 갈등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신기했던 것은 ‘회복적 써클(참여자 모두가 돌아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생활교육 기법)’의 형식만을 활용한 것이 아닌 수업 전체가 회복적 써클이었다는 것이다. 명상으로 수업을 여는 것부터 사건에 대한 객관적 인지 및 이에 따른 영향, 등장인물의 마음을 알아보는 활동까지 모두 질문과 답으로 채워갔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수업에 참여하고 답하는 모습에 분명히 일상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런 수업도 있구나, 아직도 그때의 충격은 생생하다. 학생에 대한 사랑, 새로운 수업을 개척하는 열정과 용기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수업 기법을 배우고자 신청했던 ‘일상 수업으로의 초대’는 나에게 더 큰 깨달음을 주었다. 기본으로 돌아가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배우고 적용하는 적극성, 무엇보다도 아이들 하나하나를 존중하는 열린 마음. 수업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다지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올해도 ‘일상 수업으로의 초대’는 계속된다고 하니 선생님들이 수업에 대해 많은 것을 얻어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은 옳았다.

이유정 울산 방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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