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2022년 국정 최고 지도자 대통령을 뽑는다. 우리는 현재 미국식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합리적 제도를 채택했다고 해서 그 제도가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제도운용의 관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의 전통과 문화’가 매우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최초 선례와 전범은 후대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끼치므로 매우 중요하다.
좋은 대통령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최소한의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민의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선출돼야 한다. 둘째, 국정을 유능하게 운영하고 국민통합에 힘써야 한다. 셋째, 본인과 가족이 부패스캔들에 연루되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이를 찾기는 힘들다. 어떤 이는 총칼로 권력을 찬탈했으며, 어떤 이는 장기집권을 위하여 무리한 헌법개정, 부정선거, 공포정치를 자행했고, 어떤 이는 앞 두 가지는 충족하였으나 사리사욕으로 말년이 좋지 않았다. 금년에 어느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든지 정당한 선출, 국민통합, 유종의 미, 세 가지를 엄격히 지켜나가는 새로운 대통령 문화를 만들어주기를 기원해 본다.
한편 미국이 부럽기도 하다. 지난 230년간 모든 미국 대통령이 세 가지 조건을 다 충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훌륭한 모범사례는 후대 대통령들에게 좋은 전통과 문화를 만들어주어, 미국이 신생국가에서 세계 강국으로 신속하게 발전해갔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초대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워싱턴 대통령 생일이 있는 2월에 ‘대통령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지금은 모든 전임 대통령을 기리고 있지만, 많은 주들은 이 날을 여전히 ‘조지 워싱턴의 날’이라 부른다.
초대 대통령 이름을 본따 미국 수도와 대학 이름도 지어졌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조지 워싱턴대학을 다녔다. 나름 젊은 시절에 워싱턴의 리더십을 본받으려는 열망을 가졌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독립운동, 농지개혁, 한국전쟁 수행과 한미방위조약 체결 등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억지로 뜯어고치고 부정선거를 치르다가 민심의 이반을 가져왔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지나친 권력욕 때문에 4번째 대통령이 되려다가 자신의 손으로 세운 국가에서 해외로 도망가는 신세가 됐다. 그는 좋은 대통령 전통을 물려주지 못한 것이다. 그가 남긴 나쁜 전통과 선례는 후대 대통령들에게 계속 독재와 권력찬탈을 할 수도 있다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겨 주었다.
조지 워싱턴이 현재까지도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것은 그가 혁명군 총사령관으로서 영국과의 독립전쟁 승리와 미합중국 정부를 수립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이유는 대통령으로서 보여준 그의 절제·청빈·합리의 리더십 덕분이다. 1) 그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줄 아는 절제의 지도자이었다. 영국군을 격파한 후 신생국가 미국의 왕이나 종신 대통령도 가능했다. 대륙군 장교들은 워싱턴에게 ‘대륙회의를 쿠데타로 뒤집어엎고 장군님을 황제로 추대하겠다’는 결의를 전달하였으나, 분명히 물리쳤다. 그는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기틀을 마련하고, 자유와 평등을 정착시키기 위하여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홀연히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2) 그는 청빈한 사람이었다. 초대 대통령으로서 연봉 2만5000달러를 받았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거액이었다. 그는 나라살림이 어려운 것을 고려하여 봉급받기를 거절했으나, 결국 수용했다. 의회는 차기 대통령이 봉급이 필요없는 부유한 계층에서만 나올 선례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3) 워싱턴은 신생국가 공무원들이 뇌물로 부패한 이들로 채워지면 안된다며, 의회에 요청하여 청탁금지법을 만들었다. 자연스레 청렴 공무원들이 많아졌다. 4) 워싱턴은 대통령 취임직후 개인적으로는 연방주의를 지지했지만 반대파인 토머스 제퍼슨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는 탕평책을 썼다.
이승만 대통령이 조지 워싱턴 대학을 다니면서 조지 워싱턴의 리더십과 지혜를 제대로 배우고 후대 대통령들에게 좋은 전통을 물려주었더라면, 대한민국의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 더욱 촉진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