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여파에 따른 고유가에 전 산업계가 ‘비상 모드’에 들어갔다.
한국은 원유 등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피해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이미 국내 산업계의 피해는 속속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8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러시아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은 나프타(25.3%)이고, 두 번째가 원유(24.6%)다. 러시아의 나프타·원유 공급 차질 우려로 국내 기업들은 당장 대체 수급처를 찾아 나서는 등 비상대책을 가동하고 있다.
업황이 원유 수급과 직결돼 있는 정유업계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재고 이익이 기대되지만, 고유가 장기화 시 수요 감소에 따른 피해가 예상된다.
국내 정유업계의 러시아산 원유 비중은 5% 남짓으로 미미하고 수개월 단위로 원유를 도입하기 때문에 러시아산 원유 제재가 현실화되더라도 당장 수급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뿐만 아니라 글로벌 정유사들이 일제히 러시아산 대체 수급처를 찾아 나서고 있기 때문에 대체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량 부족 속에 국제유가는 계속 더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주요 대체 수급처 중 하나로 거론되던 이란산 원유는 서방과 이란의 핵 합의 협상 지연으로 수출 재개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 프리미엄이 더욱 높아지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가격에 원유를 사 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이미 유가가 너무 높은 데다 추가 상승시 수요 위축, 정제마진 하락으로 이어져 수익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항공 등 다른 업계도 국제유가 고공행진에 따른 원자재, 연료비, 물류비 상승으로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당장 화학업계의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달 첫째 주 나프타 가격은 t당 1112달러로, 주간 기준으로 22.1% 상승했다. 만약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이 제한되면 다른 나라의 나프타로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 추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해운업계도 비용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HMM의 연료 사용액은 2020년 기준 5000억원이었지만 국제유가의 지속적 상승으로 인해 지난해 3분기 기준 비용은 6800억원까지 치솟았다.
전자·반도체, 배터리 업계 역시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류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들 업계는 최근 글로벌 선사들이 러시아 노선을 속속 중단하고 있어 물류난까지 더욱 심화돼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희귀가스나 광물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관련 기업들은 이들 원자재의 공급선 다변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대표적인 배터리 원자재 광물인 니켈의 t당 가격은 전날 기준 4만2995달러로 직전일보다 44.3%나 폭등했다.
이형중기자 leehj@ksilbo.co.kr·일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