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사자(死者)에 대한 산자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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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사자(死者)에 대한 산자의 태도
  • 경상일보
  • 승인 2022.08.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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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코로나로 인해 장례문화가 달라졌다. 상주가 문상을 정중히 사양하니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없게 되었다. 문상이 크게 줄어드니 가족이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여유가 생겼다. 조용한 장례를 겪고 있는 코로나 시대에 사자(死者)에 대한 산자의 태도를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이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은 천붕(天崩)과 참척(慘慽)의 슬픔이지만 참혹한 아름다움을 배울 수도 있는 공부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자리에서였다. 모두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염습과 입관을 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코로나로 외국에서 입국하지 못한 막내딸이었다. “엄마, 마지막 길도 배웅하지 못해 미안해, 정말 사랑해….” 말을 잇지 못한 흐느낌을 들으시고 그 어머니는 길을 떠나셨다. 이처럼 안타까운 모습이 많아졌다.

시대가 열악할수록 극빈자의 처지는 더 최악이 된다. 쪽방촌 등 도시의 그늘진 곳에 무연고자의 죽음이 늘어났다. 판데믹 시대여서 가족을 더욱 찾기 어렵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전보다 무빈소 장례가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사정이 있겠으나 추모를 위한 시공간의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 무척 아쉬운 일이다. 직접 문상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온라인 분향소를 활성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애도와 추모는 고인의 삶을 생각하며 사랑을 가슴에 묻고 명복을 비는 시간이다. 그리고 남은 자의 인생 공부이다. 부모님의 코로나 투병이나 수술과 항암치료 등 지독한 고통을 마지막 순간까지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가족이다. 김사인의 시 ‘공부’에는 어머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고통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중략) 누군가 가고 누군가 또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 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만해 집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참혹한 슬픔을 겪으며 내가 어머니의 기쁨이고 빛이었을까 반성하는 것, 못 다한 말이 회한이 되는 것도 마음공부일 것이다. 아버지가 49제 이후 영면하러 돌아가신 곳이 우리와 다른 세계 어디쯤인지 짚어보는 것도 공부일 것이다. 기일에 올리는 제문으로 고하고 혼백이 자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을 헤아려 보는 것도 공부인 것이다.

그런데 내 아이를 잃는 참척(慘慽)은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엄마의 슬픔이었다. 처절한 공부를 하고 있는 어머니들이 생각난다. 보내고 난 뒤 피는 꽃들이 다 내 아이의 영혼 같아 자신의 삶은 놓아버린다. “저 빈 의자에 아이가 있다면 엄마에게 어떤 말을 할까요?” “제 때 먹고 자고 남은 삶 행복하게 살라고 할 거에요.” 어머니도 알고 있지만 살아 숨 쉬는 게 미안해서 다시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도 그 아이가 엄마 곁에 살았었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유한한 시간에서 무한한 사랑을 느꼈기를 기원한다.

애도의 슬픔이 길어지면 우린 사는 게 허무해지고 삶의 기쁨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넌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고 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최고의 마무리가 될 것이다. 아들과 딸은 부모의 영정 밑에서 도란도란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슬픔이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계기로 우리의 장례문화는 변하고 있다. 인류역사에서 판데믹 시기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이 늘어난 시대이다. 전염병은 준비 못한 수많은 사별을 초래한다. 장례식은 늘어나고 간소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럴수록 애도와 추모의 시간을 건너뛰거나 대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죽음을 막지 못하고 더 줄이지 못하지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어둠에 빛이 스며들게 하는 것은 우리들 하기 나름일 것이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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