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이 열흘 남짓 남았다. 이 맘때면 근교 야산에는 자손들이 벌초를 하면서 풀과의 전쟁을 벌인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왱왱거리는 벌 소리 같다. 그런데 실제로 벌초를 하다 벌에 쏘이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어떤 이는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한다.
아 당신은 못 믿을 사람 아 당신은 철없는 사람/ 아무리 달래봐도 어쩔 순 없지만 마음 하나는/ 괜찮은 사람 오늘은 들국화 또 내일은 장미꽃/ 치근 치근 치근대다가 잠이 들겠지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혼자서는 이 밤이 너무 너무 추워요…

트로트 가요 ‘땡벌’은 영화 ‘비열의 거리’에 삽입된 노래로, 주인공 조인성이 이 노래를 열창해 대박을 터뜨렸다. 땡벌은 강원도 사투리인데, 원래 명칭은 땅벌이다. 경상도에서는 ‘땡삐’라고도 부른다. 땡벌에 쏘이게 되면 지독하게 아프다. 이 노래의 가사는 땡벌에 쏘이고 난 뒤에도 땡벌을 못잊어 가슴아파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줬지만 그 아픔만큼 사랑한다는 말이다.
땡벌은 굉장히 공격적이다. 예초기로 벌집을 잘못 건드리게 되면 수십마리가 한꺼번에 그야말로 ‘벌떼’ 처럼 달려든다.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고 했는데, 땡벌은 진주만 폭격에 버금가는 공중 살육전을 전개한다. 땡벌의 ‘땡’은 독하다는 뜻이다. 땡감, 땡볕, 땡초 등 ‘땡’ 자가 들어간 단어는 일단 무서운 느낌을 준다.
땡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말벌이다. 양봉 농가에서는 ‘해적’으로 통한다. 말벌 한마리가 꿀벌 550마리의 독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중국 산시성에서는 ‘대황봉(大黃蜂)’이란 맹독성 말벌의 공격으로 715명이 다치고 36명이 목숨을 잃은 바 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는 8월, 9월은 말벌의 산란기이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말벌에 쏘여 쇼크가 발생하면 1시간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 말벌 몸통 끝에는 독침이 달려있는데, 침을 찌른 뒤 주사기처럼 독을 내뿜는다.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침을 찌르고 빼고를 반복할 수 있어 더 무섭다.
벌초라는 말 참 이상한 말입디다. 글쎄 부랑 무식한 제가 몇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큰 집 조카들을 데리고 벌초를 하는데, 이 벌초라는 말이 자꾸만 벌 받는 초입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원 참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무던히 속을 썩여드리긴 했지만…‘벌초’ 일부(이홍섭)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