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메기 철이 돌아왔다. 필자의 가족은 IMF시절 조그만 소주방을 운영하면서 과메기를 팔았던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과메기가 전국적으로 퍼지지 않았을 때였다. 원래 과메기는 청어를 사용하는데, 청어가 워낙 귀해 꽁치를 사용했다. 삼산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짚으로 엮은 꽁치를 몇 두름 사와 천장에 걸어놓으면 한 열흘 동안 기름이 줄줄 빠졌다. 이를 가위로 머리와 꼬리, 등뼈, 배 부분을 발라내고 푸른색의 껍데기를 벗겨내면 훌륭한 음식이 됐다.
요즘 과메기는 미리 몸통을 쪼갠 뒤 바닷가 덕장에서 말리는 것이 보통인데, 사실은 통마리로 말려야 쫀득쫀득한 맛이 살아있고, 말리는 과정에서 먼지나 세균이 침범하지 못한다. 껍질이 단단한 보호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메기는 미역과 실파, 고추, 마늘, 김이 곁들여져야 완제품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칠맛 나는 초장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초장은 ‘과메기의 맛은 초장 맛’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통마리 과메기를 울산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 실로 안타깝다.

집어등 불빛에 속아/ 뼈대와 창자까지 발리웠지만/ 원래는 뼈대 있는 가문이었다//…/ 지푸라기에 허리가 꼭 묶여 있지만/ 보시가 이들의 운명이라/ 과메기들의 사망진단서엔/ 자연사란 말이 삭제되었다/ 가진 거라야 생미역 수의 한 벌/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으로 몸냄새를 지운다// 구룡포 선술집 노파/ 80년을 얼었다 녹아 피대기 된 몸이/ 비릿한 해풍을 접시에 담아 나르며… -‘과메기’ 일부 (홍순화)
과메기라는 명칭은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했다. 구룡포 방언으로 ‘목’을 ‘메기’로 발음하는데, 이 ‘관목’을 연이어 발음하면 ‘관메기’가 되고, 여기서 ㄴ이 탈락하면서 ‘과메기’로 굳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소설가 김동리는 수필에서 “내 고향 경주에서는 ‘관메기’라는 걸 먹었는데, 청어 온 마리를 배도 따지 않고, 소금도 치지 않고 그냥 엇말린 것을 이른다.”고 했다.
1870년 황필수가 쓴 <명물기략>이라는 책에서는 청어가 가난한 선비들이 즐겨 먹어 선비들을 살찌우는 물고기라고 하여 ‘비유어(肥儒魚)’라 불린다고 기록돼 있다. 과메기는 DHA와 EPA가 성인 남자 하루 권장섭취량의 3배 이상 들어 있다고 한다. 또 심혈관계 질환 예방과 두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잘 말린 과메기와 초고추장, 그리고 소주 한잔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