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토끼해, 다른 말로 하면 계묘년(癸卯年)이다. 토끼띠인 필자에게 토끼는 일상생활에서도 늘 접해온 동물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토끼도 있었고, 근처 산에도 토끼가 많았다. 요즘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산토끼를 잡으러 온 산천을 헤매기도 했다. 그러나 동요에 나오는 토끼는 어쩐지 다른 토끼와 다르다는 느낌이 있었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마리/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윤극영의 동요 ‘반달’은 1924년에 발표된 것으로, 전 국민들에게 애송됐다.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환상의 바다였다. 반달은 은하수에 떠 있는 하얀 쪽배에 비유됐고, 그 반달에는 옥토끼와 계수나무가 살고 있는 것으로 설정됐다. 코흘리개 필자에게 이 동요는 집에서 키우던 집토끼와는 또 다른 황홀한 토끼를 꿈꾸게 했다. 밤마다 눈을 부릅 떠서 달 속 토끼의 형체를 끄집어내보려 했으나 지금도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달에 토끼가 살게 된 것은 중국 고대 전설에서 연유했다. 중국 하(夏) 나라 때 최고의 명궁이었던 예는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얻게 됐다. 예는 어렵게 불사약을 구해놓고는 잠시 외출을 했는데 그 사이에 아내 항아(姮娥)가 두 사람 분의 불사약을 한꺼번에 먹어치우고 달나라로 도망쳐 버렸다. 그 후 그녀는 달나라에서 두꺼비가 됐다는 설도 있고, 토끼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저런 설화들이 뒤섞여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것은 달 속의 토끼와 계수나무다. 토끼는 지금도 서왕모를 위해 불사약을 찧고 있다.
토끼 卯(묘) 자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모습이고, 또 하나는 땅속에 굴이 파여 있는 모습이다. 묘 자의 해석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토끼가 굴을 판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와 관련된 사자성어가 교토삼굴(狡兎三窟)이다. 교토삼굴은 꾀 많은 토끼가 세 개의 굴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사기맹상군열전>과 <전국책>에 배경이 되는 고사가 실려 있다.
토끼는 나약하고 겁이 많지만 민중의 지혜를 대변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수궁가>에서 토끼는 토끼간을 먹으려는 병든 용왕의 손아귀에서 우여곡절 끝에 벗어난다. 3개의 굴을 파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토끼 같은 자식들’이라는 표현이 있다. 토끼는 그만큼 이쁘고 티없고 착한 동물의 대명사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토끼같은 가족을 위협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토끼굴 세 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