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86)]군불, 구들장, 그리고 아랫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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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86)]군불, 구들장, 그리고 아랫목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3.01.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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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지난 6일은 소한(小寒)이었다. 절기상 대한(大寒)이 가장 추워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한이 더 춥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에 얼어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죽은 사람은 없다’라는 속담은 1월 초순의 추위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지난달에는 소위 말하는 ‘북극 한파’가 밀려내려와 일찌감치 추위를 실감케 했다.



국으로 부엌에 드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 간밤 술을 쥐어박는 어머니의 칼질 소리/ 그 사이/ 쇠죽은 다 끓고/ 워낭이/ 흠흠 웃고/ 눈이 제법 쌓이는 걸, 싸락싸락 싸리비 소리/ 불 담은 화롯전을 타닥 탁 터는 소리/ 그 사이/ 구들은 더 끓고/ 까치 두엇/ 희게 울고 ‘그리운 두런두런’ 전문(정수자)

필자가 어렸을 적 이른 새벽, 사랑채 아랫목이 식어가면 아버지는 말없이 ‘군불’을 땠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군불은 ‘음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방을 덥히려고 아궁이에 때는 불’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가정에서는 쇠죽을 끓이면서 아랫목을 데웠다. ‘군불’의 ‘군’은 ‘없어도 되는’ 또는 ‘쓸데 없는’ 등의 뜻이지만 사실은 쓸 데 있는 불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구들장이 열을 받으면서 방 전체가 따듯해진다. 특히 아궁이와 가장 가까운 쪽의 아랫목은 요즘으로 치면 ‘특석’이라고 할만 하다. ‘나중에 들어온 놈이 아랫목 차지한다’ ‘남편밥은 아랫목에서 먹고, 아들밥은 윗목에서 먹고, 딸밥은 부엌에서 먹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구들에서 태어나서 구들에서 자라고 구들에서 죽었다. 아랫목은 산모가 몸을 풀고 아기가 자라는 요람이었으며, 노인이 최후를 맞는 임종공간이었다.

구들장이 열을 받으면 원자들이 진동하면서 전자파가 나온다고 한다. 원적외선이라 부르는 이 전자파는 온도가 낮은 쪽으로 열을 전달한다. 또 원적외선이 몸에 닿으면 피부 속의 물 분자를 움직여 열을 만들기 때문에 체감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바야흐로 문풍지가 떨리고 문 틈새에 황소바람이 들어오는 겨울 한 가운데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가 따뜻하게 데워졌고/ 사랑으로 익었다.//…// 검은 광목이불 밑에/ 부챗살처럼 다리 펴고/ 방문 창호지에 난 유리 구멍에/ 얼핏 얼핏 날리는 눈을 보며/ 소복이 사랑을 쌓고 싶다.… ‘구들목’ 일부(박남규)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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