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87)]뻥튀기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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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87)]뻥튀기는 살아 있다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3.01.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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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설 대목이면 영락없이 나오는 사람이 있다. 바로 뻥튀기 할아버지다. 장터 한 구석에 자리를 지키는 뻥튀기 장수의 모습은 설 대목의 풍경과 오버랩된지 오래다. 설이 없어지지 않듯 뻥튀기 장수의 “뻥이요”하는 소리도 메아리처럼 오래 간다.

내가 그를 뜨거운 세상 속으로 밀어 넣기 전에는 그는 다만 작은 한 알의 씨알에/ 불과 했다// 내가 그를 그 뜨거운 세상 속에서 큰소리로 불러냈을 때 그는 한순간 내게로 와서/ 뻥튀기가 되었다// 내가 화탕지옥 속에 있는 그의 이름을/ 뻥이요, 큰 소리로 불러준 것처럼/ 누가, 보잘 것 없는 내 이름을 크게 한번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뻥튀기가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별것도 없는 속을 뒤집어 부풀려 구수하게 뻥을 치는/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손이 가는 심심풀이 뻥튀기가 되고 싶다 ‘나는 뻥튀기 장수올시다’(이덕규) 전문

이 시는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시다. 어렸을 적 필자는 시 내용처럼 한 알의 씨알에 불과했던 것이 수십배의 뻥튀기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몹씨 신기해했다. 요즘 젊은층들은 달콤한 팝콘이 훨씬 맛있겠지만 필자에게 뻥튀기는 하루 종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간식이었다.

오늘날 뻥튀기 기계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이 기계는 동아일보 1932년 1월28일 광고란에 소개돼 있다. 이 광고는 ‘돈모으기의 제왕’이라는 카피로 “5홉의 쌀이 8되로 팽창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조원은 일본의 죽촌기계제작소로 표기돼 있다.

뻥튀기는 내부와 외부압력 차이를 이용해서 만드는 과자다. 기계 안에 곡물을 넣고 가열하면 공기가 팽창하면서 압력이 높아진다. 마침내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 한쪽 구멍을 열면 그쪽으로 공기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데, 워낙 압력차이가 커 ‘뻥’소리가 난다. 재료마다 튀기는 시간이 다른데 가마가 식지 않았을 때는 15분 정도면 튀길 수 있다.

1980년대 팝콘이 나오고 각종 과자들이 출시되면서 뻥튀기의 인기는 예전같지 않지만 뻥튀기의 명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뻥튀기 기계로 자식들을 길렀다는 이야기는 설 대목장 한 켠에 전설처럼 남아 있다.

뻥튀기 기계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강냉이 알이 손가락 마디만큼 커지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아마도 요술 항아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 겨울 이덕규 시인의 말처럼 ‘그에게로 가서 나도/ 뻥튀기가 되고 싶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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