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조용미 ‘겨울 하루, 매화를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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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조용미 ‘겨울 하루, 매화를 생각함’
  • 경상일보
  • 승인 2023.02.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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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매화에 기운이 오르면
그 봉오리 따다 뜨거운 찻물 부어
한 송이 우주를 찻잔 속에 피어나게 해 볼까
화리목 탁자 근처 매화향을 두르고 잠시
근심을 놓아 볼까


구구(九九)의 첫날인 십이월의 어느 날부터 나는
목이 길어지고,
옷은 두꺼워지고 발은 더욱 차가워질 테지만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의 매화에
하루하루 표시를 해 나가며

여든 하루 동안
봄이 오는 저 먼 길을 마중 나가는
은밀한 기쁨을 누려보는 것이다
매화가 피는
삼월의 어느 봄날이 올 때까지

여든 하루는 한 생, 여든 하루는 단 한순간
매화가 피는 한 생이란
매화를 보지 못하고 기다리는 한 생
탐매행에 나선 이른 봄날 어느 하루는
평생을 다 바치는 하루
두근거리나 품을 수 없는 하루


긴 겨울 견딘 매화의 ‘아름다운 봄 마중’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원동에 매화가 피었다고 지인이 소식을 보내왔다.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추웠는데도 어김없이 봉오리를 터뜨리니 푸른 빛이 도는 청매의 맑은 기운, 빙자옥질(氷姿玉質)이로다, 매화여.

시에는 ‘화리목’과 ‘구구소한도’라는 조금 생소한 단어가 나온다. 화리목은 모과나무니, 모과나무 다탁에 향기로운 매화차 한 잔이 놓인 풍경을 떠올려 본다. 그 운치가 비할 바 없다. 아치고절(雅致孤節)이로다, 매화여.

구구소한도는 동지로부터 봄이 될 때까지 81일간의 기상을 나타낸 표이다. 구구 팔십일, 여든 하루가 지나면 봄이 오고 매화가 핀다. 시인은 하루하루 표시를 해가며 매화가 필 날을 기다린다. 가히 아름다운 봄 마중이다. 매화를 기다리는 여든 하루가 한 생, 단 한순간이라니. 차가운 땅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물을 당겨 올리다가 마침내 온 생애를 던져 피는 꽃. 그 한순간을 위해 긴 겨울을 견딘 한평생 같은 기다림이고, 한평생의 두근거림이고, 한평생이 걸린 꽃이다. 꽃다운 봄소식을 먼저 전하니 매화여, 방신선전(芳信先傳)이로다.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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