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걸러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이웃 진외가 집으로 갔다
지나다가 그냥 들른 것처럼
어머니는 금세 도로 나오려고 했다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풍겨오는
맛있는 밥 냄새를 맡고
내가 어머니의 등에서 울며 보채면
장지문을 열고 진외당숙모가 말했다
-언놈이 밥 먹이고 가요
그제야 나는 울음을 뚝 그쳤다
밥소라에서 퍼주는 따끈따끈한 밥을
내가 하동지동 먹는 걸 보고
진외당숙모가 나에게 말했다
-밥때 되면 만날 온나
아, 나는 이날 이때까지
이렇게 고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태어나서 젖을 못 먹고
밥조차 굶주리는 나의 유년은
진외가 집에서 풍겨오는 밥 냄새를 맡으며
겨우 숨을 이어갔다
빈한 어린시절도 그리운 추억으로…‘오감’으로 먹는 밥
지난 2월14일에 오탁번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시를 소개하고 싶어서 찾아보다가 이 시가 눈에 띄었다. 유년의 적빈과 진외당숙모의 넉넉한 품이 과하지 않게 드러난, 서러우면서도 따뜻한 시다. 아울러 언놈, 밥소라, 하동지동 같은 토박이말의 아름다움이 잘 표현된 시이기도 하다. 허둥지둥이 아니라 하동지동. 아이가 급히 밥을 먹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옛사람은 듣기 좋은 소리 세 가지로 마른 논에 물 대는 소리, 아이가 젖 빠는 소리, 아이의 글 읽는 소리를 꼽았다. 글 읽는 소리가 글을 통한 미래의 밥벌이를 상정한다면 세 가지 모두 목숨과 관련된 소리이다. 고픈 배에 맛있는 밥 냄새처럼 사무친 게 있을까. 배고픈 귀에 ‘밥때 되면 만날 온나’라는 말처럼 반가운 게 또 있을까.
목숨을 살리는 이 소리는 불청객이라고 눈총을 줄까 봐 조마조마한 어머니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고, 빈한했던 어린 시절을 그래도 그립게 추억하게 하는 ‘고운 목소리’이다. 그러니 밥은 단지 입이 아니라, 냄새와 소리와 맛과 그때의 정황까지 오감으로 먹는 거다.
송은숙 시인